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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문화칼럼] 흥행 신화만 남은 ‘실미도’ / 신대철(국문)교수

  • 작성자 동아
  • 작성일 04.03.15
  • 조회수 8319
2004년 03월 12일 (금) 18:58

언 땅 풀리자 찬 바람에도 눅눅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머지않아 목련 꽃봉오리 벌어지면서 온갖 봄꽃들 피기 시작하고 복사꽃이 만발할 것이다. 무심히 걷던 사람들도 담장 넘어 흩날려오는 꽃잎에 걸음을 멈추고 잠시 얼굴 환해질 것이다. 그 환한 얼굴 중에는 점점 어두워지는 낯익은 얼굴도 있을 것이다.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아예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체험의 농도나 강도에 따라 사물은 변형되고 왜곡된다. 그래서 사려 깊은 사람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관념을 배제하고 혹은 괄호 속에 넣고 보라고 한다. 말은 쉽지만 우리의 삶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무엇을 넣고 뺄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에 대한 자각이 생기거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때까지는 그저 살아온 대로 온몸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부분보다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꽃을 보기만 하고 돌아서려 했는데 어느새 꽃을 꺾고 돌아서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내 체험도 강도나 농도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군에 있을 때는 지뢰 밟고 죽은 사람이 자주 떠올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죽은 사람보다는 작전에 실패하고 도중에 예고 없이 되돌아온 사람이 더 자주, 더 강렬히 떠오른다. 그때 그는 안개 속에서 흐느적흐느적 지뢰밭으로 걸어왔다. 정지! 해도 멈추는 듯 걸어왔고 암호를 외쳐도 그냥 걸어왔다. 자세히 보니 엊그제 헤어진 사람이었다. 복사꽃 피면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웃으며 말하던 사람이 복사꽃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머리를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였을까. 작전을 포기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 많은 질문을 가져보았지만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긴 침묵만 주고받았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우리의 어두운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사건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영화 ‘실미도’가 파장을 일으킨 것도 작품 자체보다 사건의 진상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실미도’가 처음 개봉됐을 때 모두 비극적인 사건의 사실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에 대한 관심은 흐려지고 1000만 돌파 흥행기록만 남고 있다. 실미도 사건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기치 않게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게 된 영화가 이젠 예기치 않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온전히 밝혀지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 의해 역사적 사실은 흥행에 가려 허구가 되어간다.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는 1000만명이라는 신화적인 숫자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신화적인 숫자 속에 묻혀지는 저 사람들, 복사꽃 피면 언제나 돌아오는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바람이 불 때마다 묵은 갈대들 휘어지면서 환하게 드러나던 복사꽃, 그 만발한 복사꽃 사이에 어둡게 웅크리고 앉아 흩날리는 꽃잎을 파편처럼 맞으면서 복사꽃 피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저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대철 국민대 교수·시인

필자는 1960년대 말 DMZ에서 학군 장교로 근무하면서 북파공작과 일정한 관계를 맺었다. 당시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실미도에 대한 명상’을 ‘창작과비평’ 2004년 봄호에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