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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DT 시론] SI산업 생존의 길 / 김현수(BIT대학원장)

  • 작성자 디지털타임스
  • 작성일 04.10.05
  • 조회수 7738

[디지털타임스 2004-10-04 10:59]

김현수 한국SI학회장ㆍ국민대 교수

결실의 계절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 되뇌어지는 때다. 우리들의 여름은 위대하였으나, 결실을 위해 보다 따뜻한 이틀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집 없는 자를 위해 집을 더 지어주고, 지금 외로운 자를 위해 다정한 벗이 되어야할 때가 되었다. 긴 가을밤 잠 못 이루는 자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낙엽이 떨어진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헤메는 자들을 위해 평화의 안식을 주어야할 때다.

경기의 양극화와 저성장 지속으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서 많은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고, 빈부 격차의 심화로 인해 중산층 이하의 삶이 고통 받고 있다. 이 가을날 우리가 어떻게 상호 공영하는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시장은 낭만적이지도 못하고, 안정적이지도 못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차별화가 선행 요건이다. 경쟁 환경에서 자신을 차별화하지 못하는 기업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과학자였던 가우스는 `경쟁하는 두 종(種)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방법으로 살 수 없다'는 가우스 법칙을 정립하였다. 생태학적으로 같은 종은 같은 서식지에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인데, IT혁명과 글로벌경제시스템의 대두로 서식지의 공간적 반경이 매우 넓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같은 종의 공존이 보다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전자, 자동차, 철강 등을 비롯하여 여러 산업에서 이미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고, 소프트웨어 및 IT서비스업에서도 이런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SI산업은 대기업간에,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는 영역이 유난히 많다. 차별화가 부족하고, 전문화가 부족하며, 전문성 강화를 위한 환경요건도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가격 경쟁이 가장 효과적인 경쟁수단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환경이 상당기간 지속되면 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산업 육성 전략을 다시 짜고, 글로벌 환경에서 차별화된 기업들을 육성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기업간 차별화를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다음으로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은 효율적인 경쟁시스템 도입이다. 경쟁시스템이 건전하게 작동하지 않는 조직이나 사회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천년 제국 로마의 쇠망 원인도 팍스로마나 시대를 종료시킨 양자제도의 포기와, 속주민에게도 시민권을 완전히 개방한 로마시민권 제도의 변경 등 `경쟁시스템의 붕괴'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황제가 능력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환경이니 황제와 지도층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고, 누구나 로마시민이 되는 환경이니,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속주민의 열정적 노력이 사라지고, 기존 로마시민의 국가 발전 의지도 함께 쇠퇴하여 갔을 것이다.

SI산업에서도 시장 확보와 사업 수행에 효율적인 경쟁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즉 시장세분화를 통한 사업 영역의 공정한 배분 시스템도 필요하고, 기업의 전문성 분야를 판단하고 활용하는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산업에 속한 개별 기업이 자신의 포지셔닝을 분명히 가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산업육성을 위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국가는 도로와 통신 등의 하드웨어 자원이 주요 인프라이지만, 소프트웨어 및 IT서비스업의 핵심 인프라는 잘 교육된 인적자원이며, 또 산업에 축적된 지식과 정보이다. 기업들의 재교육 노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교육인프라를 대학과 산업계에 구축해줄 필요가 있다. 대학과 산업계가 상호 연동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고, 특히 SI 산업의 고도화에 필요한 업무영역 지식(Domain Knowledge)이 있는 소프트웨어 및 컨설팅 인력 양성에 민관학이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

요즘 대형 SI기업들의 불가피한 사업 재조정과 중소기업들의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자칫하면 우리의 소프트웨어 및 SI 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에의 잠재력이 큰 산업분야 하나가 위기에 처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결코 밝지 못하다. 시장을 낭만적으로 보지 말고, 산업을 살리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강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