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sign:서명)은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는 행위를 의미한다. 흔히 서양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유행했다. 사인은 주로 문서에 사용되어 ‘결재’ ‘공증’의 의미로 쓰였지만 서화류, 도자기는 물론 되나 말과 같은 도량형 용구에도 제작자나 이용자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서명은 수결(手決), 화압(花押), 서압(署押) 등으로 불렸다. 이중 ‘일심결’(一心決:오직 한 마음으로 사심없이 결제한다는 뜻)이라고 불린 수결은 특히 관청문서, 분재기 등 공문서에 주로 쓰였다.
서명은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므로, 자연스럽게 개인의 품성이 드러난다. 서명자는 각기 자신의 이름이나 일심(一心)과 같은 의미를 담아내면서 개성에 따른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서명은 문자의 조형미와 상징성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독특한 사인 문화를 꽃피웠던 조선시대의 서명들을 한자리에 모은 ‘조선의 싸인’전이 8일 개막돼 국민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2월1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전통시대의 사인만을 모은 최초의 전시로, 서명을 통해 고문서 문화의 특징과 사인에 담긴 서예적 가치, 조형미를 살필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국민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설촌고문서’에서 뽑은 서명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서명들은 모두 100여점으로 문자형(文字形), 수촌형(手寸形), 수장형(手掌形), 각압(刻押) 등 사인의 형태별로 나눠 선보였다.
이름에 쓰인 한자를 변형해 쓴 문자형으로는 1800년대 경기도 유생 123명이 부평에 사는 효자에게 포상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문서를 비롯해 호구단자와 같은 호적문서, 교첩(敎牒:관리 임명장), 화회문기(和會文記:분재기), 간찰에 쓰인 서명 등이 전시됐다. 이중 경기 유생들의 청원문서는 당시 서명이 매우 일반화됐음을 보여준다. 또 정조 임금이 별군직 이유경에게 내린 전령문서에 서명한 수결은 서예의 조형미와 함께 장중하고 호방한 느낌을 준다.
문서에 손가락을 대고 그린 수촌형와 손바닥을 대고 그린 수장형은 글을 배우지 못한 서민, 천민들이 주로 사용하던 서명이다. 가옥 및 토지매매 문서에 많이 보이며, 문서 작성자와 서명자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밖에 수결을 나무에 새겨 사용한 각압은 관공서의 수령들이 관청의 인장 대신 사용한 것으로 눈길을 끈다.
국민대 박물관의 박길룡 관장은 “조선시대의 수결은 왕실에서 천민까지 모두가 고루 가지고 있던 문예”라며 “이번 전시는 조선의 생활문화를 또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