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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DT 시론] 란체스터법칙과 SW산업전략 / 김현수(BIT전문대학원장)

  • 작성자 디지털타임스
  • 작성일 04.12.07
  • 조회수 5978


김현수 한국SI학회 회장ㆍ국민대 교수

연말이 가까워지면 사뭇 감상적이 되며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올 한해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묻기도 하고, 끝을 알지 못하면서 끝을 아는 듯이 살아온 시간을 부끄러워도 한다. 또 산업 혁신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 성과가 지지부진함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내년은 어떤 전략으로 맞아야 할 것인가.

인도의 소프트웨어산업이 규모면에서 2003년도에 190억불을 넘어섰고, 내용면에서도 미국의 단순 개발 업무 아웃소싱 파트너가 아닌 독자적인 기술력과 제품 생산능력을 가지는 주도적 산업으로 발전되고 있는 상황을 접하면서, 우리의 소프트웨어산업 전략도 내년에는 확실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국가의 소프트웨어산업은 란체스터 법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즉 경쟁의 규모가 바뀌면 경쟁의 본질이 달라지는 산업인 것이다. 란체스터는 20세기 전반기에 주로 활동한 사업가 겸 엔지니어인데, 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의 1:1 공중전에서는 뺄셈의 법칙이 적용되지만, 편대 비행을 하는 그룹전에서는 제곱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어 적군의 비행기가 3대이고, 아군의 비행기가 5대 일때, 항공기의 성능이 비슷하고 조종사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개인전으로 치를 경우 살아남는 아군의 비행기는 2대이지만, 그룹전으로 치르면 살아남는 아군의 비행기는 그 제곱인 4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의 한사람인 하이젠베르그에게도 영향을 주어 `부분의 합이 과연 전체인가?'라는 철학적, 물리학적 과제를 탐구하게 하였고, 그는 `규모가 다르면 본질도 바뀐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규명한 바 있다. 강자에게는 전력차이의 제곱의 비율로 우위가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산업은 제품군간의 또는 에코시스템간의 경쟁이다. 시장 진입과 영역 확대시에 제곱이상의 비율로 강자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 또는 SAP의 아성에 여러 기업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무수한 난관에 부딪치는 이유가 이러한 것이다. 우리 소프트웨어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세계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대표 제품군을 하나라도 가져야 한다. 대표 제품군을 가지는 기업이나 기업 연합을 탄생시켜야 한다.

대표기업을 육성하는 전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철저한 시장원리에 의해 독자 생존하도록 모든 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을 완전히 끊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후원하에 국내의 대표기업들이 공동 출자하여 유망한 제품군을 개발하는 거대기업을 만들어 집중 육성하는 것이다. 전자는 한계기업의 퇴출을 촉진함으로써, 유망기업의 과점 상태를 앞당길 수 있고, 유망기업은 개선되는 수익성을 더욱 연구개발에 투자하여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 신시장 개척을 가속화하여, 세계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조기에 획득할 수 있는 전략이다. 후자는 치밀한 계획 하에 가능성 있는 제품군을 집중 육성하여 더욱 단기에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전자는 유망기업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임계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위험이 있고, 후자는 투자 기업간의 의견 불일치와 소유권 논쟁으로 인해, 조직 운영이 난관에 봉착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어떤 위험을 취할 것인가. 극복할 수 있는 위험을 취할 것인가, 행운에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제3의 선택을 할 것인가. 1910년대에 포드의 T-카가 미국 전역을 휩쓸자 이에 밀려난 자동차 회사 6개가 생존을 위해 회사를 합치고 이름을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 GM)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들은 포드의 대량생산체제에 대응하여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며 1927년에 자동차 산업의 선두기업으로 부상하였다. 이 GM이 아직까지 자동차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전략의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지만, 과실은 후세대가 거둘 것이다. 용기 있었던 선배로서 기억될 것인가, 우유부단하였던 부끄러운 선대로서 기억될 것인가. 시도하지 않는 것은 실패하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다.

디지털타임스 2004-12-06 02:5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