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언론속의 국민

[아침을 열며] 걔는 내가 다 키웠지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 작성자 유소윤
  • 작성일 20.01.15
  • 조회수 1800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플러그 앤드 플레이 테크센터’에서 기조연설을 하던 중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을 배경으로 말춤을 추고 있다. 서울시 제공

저를 지도교수로 삼아 학위 과정을 마친 이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저는 여전히 고민합니다. “그의 대학원 지도교수가 저였습니다”는 좀 긴데, 그렇다고 어떤 분들처럼 “그는 제 제자입니다”라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제자라는 말은 무협영화에서처럼 사부로부터 뭔가 큰 가르침을 얻은 이들에게나 맞는 말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지칭하면서 “걔는 내가 다 키웠지”라고 말씀하는 엄청난 분들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애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머리 굵은 성인을 키워서 사람 만들다니, 그저 무릎을 꿇습니다.

요즘 자주 쓰이는 유니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로 평가되어 투자받은 비상장기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을 살피면 산업별 혹은 기술별 투자동향을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시장분석 회사들은 관련 통계를 수시로 발표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씨비인사이트(CBinsight)라는 회사가 내놓는 통계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언젠가부터 이 통계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공식자료에 국가별 유니콘 수가 순위화되어 등장하더니, 어떤 장관께서는 공식석상에서 “유니콘기업 숫자가 곧 국가경쟁력 지표”라고 공언했습니다. 2019년에는 10개, 2020년에는 20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목표도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초, 정부는 “국내 11번째 유니콘기업 탄생, 유니콘기업 순위 상승” “우리나라는 독일과 공동 5위”라는 굵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목표 초과달성! 정부가 유니콘들을 키웠다는 자부심이 자료 여기저기 묻어 났습니다. 유니콘을 키운다는 자랑에 지자체도 동참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장님은 미국의 한 행사에서 우리나라 유니콘 순위가 세계 5위이며, 서울이 11개 중에 9개를 키웠다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결이 싸이의 말춤과 연관되어 있다는 신선한 설명과 함께 사람들 앞에서 말춤을 추는 용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랑과 달리, 우리나라의 유니콘은 11개가 아닙니다. 시장님이 연설하시던 시점에 이미 10개로 줄어 있었습니다. 독일과 순위가 같지도 않습니다. (독일은 12개). 정부와 서울시가 뭔가 잘못해서 금세 이렇게 악화된 것일까요? 누구를 문책해야 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이 통계는 그저 참고자료일 뿐, 학술적인 가치도 없고, 정부 활동과의 인과관계도 증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지표를 진지한 정책 목표로 여기는 나라는 없습니다. 뭔가 좋아지고 있는 통계를 하나 찾아서 정부의 업적으로 과시한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최대의 IT 전시인 CES2020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제품이 주로 소개되는 ‘유레카파크’는 대체로 국가별로 전시관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관과 서울관이 각각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대전시와 대구경북도 별도로 출품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해당 지자체의 이른바 VIP분들이 오셔서 기념촬영하기가 좋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도시들에는 경제성장과 혁신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펼치는 공무원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노력과 공을 인정받고 싶은 것도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원래 무대 뒤에 서야 하는 직업들이 있습니다. 조명이 켜진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공연장 스태프가 아니라 주연배우인 것처럼, 졸업식에 입장하는 것이 교수가 아니라 학생인 것처럼 말입니다. 경제 활동의 주역은 개인과 기업이며, 그들을 마음껏 활동하게 하도록 하는 조명 뒤 활동이 공공의 역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걔는 내가 다 키웠지”라는 말은, 어두운 구석에서 혼자 실실 웃으면서 하는 것이 제맛입니다. 믿지도 않는 남들 앞에서 우기느라 애쓸 필요 없이 말입니다.

원문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1141319764322?did=NA&dtype=&dtypecode=&prnewsid=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