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조동걸(73) 국민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1월 위암수술 이후 1년여의 투병생활을 털고 일어섰다. 최근 독립기념관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제정한 제1회 독립기념관 학술상을 수상한 그를 만나 오늘날 역사학의 의미를 되새겼다.》
15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 인근의 커피숍에서 만난 조 교수는 80kg이었던 체중이 60kg까지 줄었다. 지난해 1월 위암수술로 위의 3분의 2를 잘라낸 데 이어 4월에는 뇌경색으로 인한 우반신 마비까지 겹쳐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며 병마와 투쟁한 흔적이 역력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아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작년 말 퇴원 이후 물리치료로 마비됐던 오른쪽이 많이 좋아져 요즘은 옛 원고도 정리하고 집 주변 산책도 하면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상(賞)이라는 게 과거 연구 성과에 대한 격려와 미래의 연구에 대한 독려의 성격이 있는데 후자를 기약할 수 없는 내게 상을 준 게 건강회복을 기념하는 의미인 것 같아 미안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조 교수는 병석에 눕기 전까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을 맡아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펼쳤다. 이번에 수상대표작이 된 ‘한국 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푸른역사·2001년)도 자신의 칠순 때 제자들이 헌정논문집을 내겠다는 것을 사양하고 스스로 편찬한 논문집이었다. 그런 그가 병마로 신음하는 동안 국가 안팎은 수많은 역사논쟁으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대한 노학자의 심경은 어떤 것일까.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방향은 옳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이 좀 강한 것 같아 걱정됩니다. 정부가 떠드는 것을 보면 꼭 대학생들이 떠드는 것 같아 위태위태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번에 잘못하면 다시는 고칠 수 없다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민족주의를 넘어서자’는 주장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복 60주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독립운동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소련에 의한 해방과 분단 60주년일 뿐입니다. 진정한 광복은 해방과 분단을 통일로 가져갈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없다면 통일의 필연성도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한 당국자와 민간대표자들의 국립묘지 참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분단의 유산도 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번 북한대표단의 참배 대상은 독립투사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여기에 맞춰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나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사들의 묘지인 혁명열사릉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묘지인 애국열사릉에 참배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당부의 말을 부탁했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이에 대한 풍부한 해석, 그리고 엄정한 평론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때 평론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 양심과 정의를 고양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흥밋거리로 전락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