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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윤종영의 IT로 보는 세상]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때다 / 윤종영(소프트웨어학부)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5.29
  • 조회수 1237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페이스북이 수년 전에 강조했던 업무지침 중에 'Move fast and break things'라는 문구가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고 낡은 것을 파괴하라'로 해석되는 이 문구는 빠르게 혁신해 나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단면을 잘 보여 줬다.

그런데 우리의 스타트업은 혹시 'Move fast and break nothing'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빠르고 역동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낡은 것을 파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그러한 모습 말이다.

제2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실리콘밸리. 태평양 연안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잇는 지역을 일컫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강원도의 약 3분의1 면적에 300만명 남짓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한 미국 전체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수많은 스타트업을 통한 혁신과 이에 수반하는 경제규모는 웬만한 국가와도 견줄만하다.

이런 실리콘밸리를 모방해 제2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미국 내 타 지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돼 왔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여러 정부 부처와 지방 자치단체에서 엄청난 예산, 시간, 인력을 쓰면서 혁신 스타트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써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그 성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왜 유니콘의 등장은 가뭄에 콩나듯일까

170여개에 달하는 유니콘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보유한 미국과 달리 국내 유니콘기업은 이제 10개를 막 넘어섰다. 물론 여러 상황과 조건에서 앞서 있는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많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목할만한 성적이 없다는건 결국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테다.

실리콘밸리는 수십 년의 시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반면에 국내의 '밸리'들은 비교적 단기간에 정부의 인공적인 계획으로 이루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자면 실리콘밸리는 스스로 성장해왔고, 우리의 '밸리'는 정부의 품안에서 자란 곳인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스타트업 성장의 핵심은 자립이다. 갓난 아이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며 성인이 되듯, 스타트업도 초기 단계를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성장이 중요하다. 젖먹이를 키울때 모유에서 이유식으로 그리고 결국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듯이 스타트업 육성도 자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

스타트업 육성을 관이 주도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여러 정책들은 오히려 스타트업을 계속 젖먹이에 머무르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고객과 시장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에만 매달리게 되면서 스타트업 본연의 경쟁력은 뒷전으로 처지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종종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 - 혁신의 분위기와 문화 만들기

실리콘밸리의 특성 중 하나는 엉뚱하고 천재 기질이 있는 괴짜들(영어로는 nerd 혹은 geek 이라고 한다)이 마음대로 편하게 연구하고 실험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괴짜들이 바로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 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와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문화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어떤 모습이 만들어 져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함께 따라 주어야 할 것이다.

규제와 자율의 갈등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아직 자율의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전에 미리 규제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기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현재의 규제 시스템은 위험관리에만 치우쳐 있어서 기술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에는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단지 각 정부 부처의 위험관리 측면에서 기존의 틀만을 고집하는 쪽으로 지속된다면 이는 오히려 급속하게 발전하는 기술의 장점을 규제하게 되고, 결국 혁신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때

정책이나 지원보다는 시장에 집중하고 고민하며,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추구하면서, 국내와 글로벌을 함께 볼 수 있는 넓은 시야와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들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훌륭하고 멋진 우리의 스타트업들. 혁신과 스타트업 클러스터의 선배격인 실리콘밸리의 철학과 특성을 더욱 꼼꼼히 살펴보고 잘 소화해 적용시킨다면, 제2의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제1의 '대한민국밸리'로 성장해 더욱 큰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윤종영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윤종영 님은?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원에서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을 가르치고 있다. 미 스탠포드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15년 넘게 실리콘밸리에서 IT컨설턴트업을 해오면서 실리콘밸리를 깊고 다양하게 체험했다. '응답하라 IT코리아'를 공동집필한 바 있으며, 팁스타운 센터장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도왔다. 현재 서울산업진흥원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72085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