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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공공수장고에서 펼쳐질 전시의 향연 / 한정희(행정대학원 03) 동문

  • 작성자 김해선
  • 작성일 20.02.24
  • 조회수 1318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2)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의 기획전시

뮤지엄(미술관 및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의 주요 목적은 '전시 감상'이다. 전시를 기획할 때에 주제와 함께 작품을 선정하게 되는데, 작품 선정에 따라서 전시 완성도와 흥행의 성공 여부가 나뉘기도 한다.

이때 작품은 각 뮤지엄의 소장품 중에서 선정하거나, 기획 의도에 적합한 작품 섭외 및 의뢰를 하는 개별적인 경우로 나누거나 중복하기도 한다.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의 경우에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수장고의 기본 개념을 탈피하고 대중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전시의 기능까지 더해져 새롭게 태어났다.

따라서 이곳의 전시는 일반적인 뮤지엄의 경우와 달리, 공공수장고에 맡겨진 작품 중에서 선정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쉽게 공개하지 못했던 작품, 주제와 기획으로 엮이지 못했던 작품 등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차별화된 특징을 갖고 있다.


문화예술 공공수장고 전시 ⓒ헤드라인제주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의 강봉석 학예연구사는 "시선이라는 것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잖아요. 동물은 시선을 보낸다고 하지 않으니까요. 시선이라는 주제 안에 기억, 우리, 공간이라는 세부주제를 넣은 것은, 작가들이 각기 다른 주제로 작업 했지만, 사람과 인간으로 묶을 수 있었다. 작가들은 주제, 제작 시기, 가치관, 재료가 다르지만 우리라는 공동체적인 개념으로 풀어냈다. 인체를 만든 작가들의 기억에서 그것을 뽑아냈는데, 시공간의 차이를 한곳에 모아 놓은 것도 의미가 있다"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공공수장고에서는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이제라도 생겨서 다행이다"라고 말한 강 학예사는, 제주에서 최초로 문화재수리 자격증(보존과학공)을 취득했으며, 이곳에 오기 전에 제주대학교박물관,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근무했다. 제주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서대학원에서 보존처리학을 전공한 그에게 이곳은 주인을 잘 찾은 제 옷과 같은데, 옷이 날개란 말처럼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에서 그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길 기대한다.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에서는 기본적인 업무 이외에도, 지속해서 전시를 개최하고, 다양한 문화행사 및 학술 세미나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것은 공공수장고가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것과 같은데, 우리도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1편에서는 공공수장고의 건립 배경과 운영 방안 등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이곳에서 진행 중인 기획 전시의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 입체 작품으로 구성한 ‘시선들; 기억, 우리, 공간’ 展


구본주 작 '갑오농민전쟁2', 1994, 청동, 260×120×267cm. ⓒ헤드라인제주

이번 전시에서 구본주의 인체 작품은 관람 동선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원근법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만큼 큰 규모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구본주의 작품은 인체의 비례와 묘사를 부분적으로 매우 극대화했다.

특히 무릎을 굽히고 있는 발의 크기와 어색하게 뒤틀린 근육의 위치와 자세를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강조 때문에 작품으로 몰입할 수 있는 큰 힘을 갖게 되었다. 구본주 작가는 노동자, 농민, 샐러리맨 등 1980~1990년대에 시대를 이끌어 가는 민중과 자본주의에 맞선 처절한 노동자들을 표현하여, 시대정신과 사회문제를 작품 속에 담아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7세에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하게 되고 ‘영원한 청년 작가’로 불리는 천재 조각가로 남아있다. 이 작품은 ‘2017 제주 비엔날레’에서 ‘다크 투어리즘’의 일환으로 알뜨르 비행장에서 전시되었기에 낯이 익을 수도 있다.

# 조성묵

인체를 표현한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임에도 의자 두 개가 놓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조성묵 작가가 ‘메신저’라는 주제로서 의자의 형상을 표현한 작품인데, 의자를 통해서 인간의 존재, 의자의 상징성, 기득권과의 관계 등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국수’ 재료를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 연작을 발표했으며, 물질 자체보다 인식의 전환과 관계를 드러내는 작가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연작인 국수로 만든 작품은 서귀포시립기당미술관 입구에도 설치되어 있다.


조성묵 작 'MESSENGER', 2000, 청동·알루미늄, 100×100×50cm. ⓒ헤드라인제주

광택이 나는 매끈함을 간직한 빨간빛 작품이 한눈에 시선을 잡아끈다. 두상, 몸통, 다리의 형태로 보아 인체를 표현한 것이 맞을 텐데, 작품 제목을 보니 ‘달콤한 뚱땡이’이다.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으로 규격화되어 산다는 것은 편리함, 풍부함, 안전함 등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현재를 바라보게 하고 자신의 모습을 파악하면서 행복을 찾게 하는 것이다.

# 이승수

동선을 용접하여 빈 곳을 형성한 채로 인체를 완성한 작품의 제목은 ‘숨비소리’이다. 해녀는 기계장치 없이 바다에서 물질(잠수)하므로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내쉬는 것을 숨비소리라고 한다.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해녀 문화는 그만큼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이승수 작가의 작품으로 탄생한 숨비소리의 작품은 제주를 향한 사랑과 가치를 보살피고 있는 강한 애착심을 알게 된다. 작품에서 빈 곳을 간직한 인체의 내부에는 물고기의 머리가 심장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리 부분에는 해초류가 얽혀있는 모습을, 좌대 역할을 하는 하단의 원통형에는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어서 바다를 떠올리게 해준다.


이승수 작 ' 숨비소리', 2010, 동(산소용접), 175×70×45cm. ⓒ헤드라인제주

# 김남숙

제주특별자치도의 옛 지명은 ‘탐라’로 조선시대에 와서 ‘제주도’로 바뀌었다. 김남숙 작가의 ‘탐라인’은 제주인으로서 역사와 기원을 담고 제주를 표현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많고, 돌이 많아서 삶이 고단한 탓에 변화된 것은 제주의 언어도 포함되어 있는데, 제주어가 짧아지고, 제주인의 성향이 다소 무뚝뚝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인체는 두상과 몸통으로 간결하다. 각 덩어리는 육면체로 사각이 있는 형태이고, 두상의 위쪽에는 물고기, 나무 등을 표현하여 탐라인과 탐라국의 특징까지 반영했다.


김남숙 작 '탐라인', 2007, 혼합토, 색화장토·단풍유·재유, 39×16×11cm, 56×18×13cm 외 4점. ⓒ헤드라인제주

# 허민자

허민자 작가의 ‘사랑’은 인간애를 표현한 점도 있을 테지만, 현대인의 마음 상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몸통을 표현한 하단의 덩어리 가운데에는 공간을 깊이 파내어 공허한 현대인의 마음 상태로 보인다.

그런데 두 작품의 가운데 공간을 전체적으로 보면 하트(♡)모양을 연상케 하는 점도 사랑은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며,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적인 의식을 설명하는 듯하다. 또한, 제주의 작가로서 삶과 문화 전체에 녹아있는 화강암을 연상하게 하는 거칠고 구멍이 뚫려있는 마티에르를 표현했다.


허민자 작 '사랑', 2003, 석기점토, 소다재유, 120×35×35cm, 117×28×28cm. ⓒ헤드라인제주

# 오성권

오성권 작가는 제주 출생으로 대학 재학 시절, ‘혼돈’ 작품을 제주미술대전에 출품하고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두 명의 인체를 상하로 배치하였는데, 두 명의 인체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붙잡고 있다. 인간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수상작품으로 제주문화예술진흥원에서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을 전시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작가 활동과 생계를 둘 다 책임지는 것이 버거웠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작업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함께 감상할 기회가 마련된 것이 공공수장고의 특이점이자 장점이라고 본다.


오성권 작 '혼돈', 1999, 철·테라코타, 80×80×200cm. ⓒ헤드라인제주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나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은, 질문의 해답을 찾는 것과 닮았다.

'인간의 존재와 고뇌, 사랑, 이데올로기'로 요약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으로서 사유의 방향을 헤아려 보게 한다.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코너는?...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디렉터가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19 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 꿈' 및 'DMZ 평화 생명의 땅', 2018 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아트&아시아 제주 2015 쇼케이스, 2015 서귀포예술의전당 전시실 개관기획전,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기획, 언론 기고,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정희 디렉터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주경야독 문화재아카데미 ‘한국미술사’ 강사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운영위원

삼매봉도서관 운영위원

원문보기: http://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8941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