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씨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혁명을 꿈꾸고 준비한 적이 있다"면서 '군부 쿠데타'를 모의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3일 오후 국민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박정희 정권이 엄청나게 강권이었다”면서“거기에 부딪치다보니 시인답지 않게 병법도 공부했었다”며 '혁명의 추억'을 회고했다. 그는 "이종찬 선배가 나와 고 조영래 변호사를 피신시키는 등 민주화운동에 숨은 공이 있다"고 밝히고 그와의 혁명 논의가 상당한 정도로 진행됐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혁명을 모의했었다는 사실은 그의 회고록에도 이미 밝혀진 내용이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전 국정원) 보좌관을 맡았던 이 전 국정원장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새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혁명을 모의한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서전에서 김씨는 "우리 두 사람은 학생운동이나 민중운동은 이념 그 자체를 그대로 관철하려 들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상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 그 구상은 박윤배·청강 장일순·이종찬과 그 동료들 그리고 나와 내 동료들로 이루어지는 한 통합 세력에 의한다는 것, 지금의 운동은 결국 새로운 군부(軍府)의 효과적 쿠데타에 의해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 그 쿠데타의 준비는 우선 장일순과 이종찬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 지도된다는 것,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 씨를 세우되 책임지는 각료와 집권 세력의 3분의2는 반드시 우리 세력이 점거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해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청강 장일순 선생은 5·16 쿠데타 직후 펼친 중립화평화통일론을 빌미로 3년간 옥고를 치른, '민주화운동의 배후'로 평가받는 사상가다.
김씨는 또 "이종찬은 곧 송죽회(松竹會)의 믿을만한 자기 동료 한 사람을 상시적 연락책으로 원주의 청강 장일순 선생에게 연결시킬 것, 쿠데타의 시기와 방법 등은 유동적이되 최종적으로는 바로 전술(前述)한 세력의 지도부에 의해 결정되며 그 전까지는 목숨을 걸고 그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지지나 동맹국들의 문제, 북한이나 러시아·중국의 있을 수 있는 동향 등은 모두 이종찬 선배가 맡을 것 등에 대해서도 합의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며칠 있다 장일순 선생에게 이 사실이 보고되었고 바로 이틀 후엔가 이종찬 선배의 동료인 한 현역 중령이 사복 차림으로 장선생의 봉산동 자택을 한밤중에 다녀갔다"면서 혁명 모의가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혁명 모의가 중단된 이유에 대해 김씨는 강연회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한 이후 하나회가 방대하게 세를 형성하면서 '더이상은 안 되겠다'는 마음에 발을 뺐다고 말했다.
한편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일각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해주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박 정권의 경제계획은) 이미 민주당 때부터 시작된 일인데 독재한 인물을 숭배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