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피카소의 걸작인 맹인의 식사를 감상할 수 있다. 한 눈 먼 남자가 홀로 식탁에 앉아 왼손에는 빵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물병을 더듬는 애틋한 순간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처음 대면한 대다수의 관객들은 화면에서 진하게 뿜어져 나오는 절대 고독의 기운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강렬한 감정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시각장애인의 소외를 다룬 주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화면이 온통 선명한 푸른색으로 물든 까닭이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마치 청색과 열애에 빠진 듯 청색만을 사용한 그림을 그렸다. 청색 렌즈를 낀 채 세상을 보고, 청색으로 영혼을 염색하였으며 청색 옷만을 고집했다. 대체 피카소는 왜 그토록 푸른색에 집착했던 것일까?
당시 그는 예술가에게 숙명과도 같은 혹독한 통과의례를 겪던 중이었다. 세계 미술을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고향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둥지를 틀었으나 가난과 향수병이 복병처럼 그를 덮쳤다. 치열한 가슴앓이를 경험한 그는 그 격렬한 청춘의 순간들을 청색 물감에 섞어 화폭에 바른 것이다.
난데없는 피카소의 청색그림으로 글의 서두를 파랗게 물들인 것은 필자가 소개할 컬러 여행이 바로 색채의 역사를 통해 그림을 보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명화를 감상할 때 관객들은 주제나 내용, 형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느끼고 분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한낱 재료에 불과한 물감이 화가의 창작 혼을 자극하고 미술사를 이끄는 결정적인 매체라고 주장한다. 그런 지은이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녀가 색깔이 탄생한 장소를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채집한 산 경험을 생동감 넘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시대에 성모 마리아의 성스러움과 미덕을 빛내기 위해 쓰였던 울트라마린의 원료가 나오는 광산을 보려 아프가니스탄을, 바다자주색의 신비를 확인하려 중미의 외딴 마을을 찾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다양한 물감들의 제조 비법과 물감에 무지한 화가들이 겪은 일화들을 제목 그대로 컬러풀(Colorful)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대목들이다. 예를 들어 인상파 화가들이 화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밝힌 대목이 그렇다.
인상파 이전의 화가들은 화실 밖에 나가 유화를 그리는 일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화가들은 안료를 돼지방광 속에 보관해두었으며 물감이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가죽에 구멍을 뚫어 짜낸 다음 다시 구멍을 봉했다. 생각해 보라, 행여 방광주머니가 터질까 조바심이 난 화가들이 과연 그와 같은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방광주머니를 들고 나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시도를 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에서 사물을 직접 관찰한 후 그 신선한 날 것의 감각을 화폭에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841년 휴대용 물감용기가 개발된 덕분이다.
책은 또 특정 물감의 독성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악마적인 색채의 아름다움에 홀려 위험을 자초한 화가들의 불타는 창작 혼과 그들이 물감 정보에 어두운 나머지 숱한 걸작들을 훼손한 일화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반 고흐의 작품 '분홍 장미'는 물감이 변질되는 바람에 '백장미'로 불렸다가 결국 '장미'로 개명되는 곡절을 겪었다.
현란한 색채 탐험을 끝내고 책의 끝장을 덮을 무렵 문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떠올랐다.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의 인기 덕분에 최근 '최후의 만찬'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그러나 어렵게 화집을 구한 사람들은 이내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림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원작의 감동을 느끼기 어려운 탓이다.
이 명화는 1499년 세상에 선을 보이기가 무섭게 썩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걸작이 이처럼 빨리 부식된 것은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다빈치의 과욕이 부른 결과였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릴 때 수지와 유황, 석고를 바른 벽 위에 계란과 안료를 혼합한 물감인 템페라를 입히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던 것이다. 천재의 대명사인 다빈치도 물감에 습기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에 무지했다. 그 결과 미술사의 최대의 불행으로 일컫는 '최후의 만찬'의 비극이 벌어졌다. 수세기에 걸쳐 피나는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그 어떤 첨단 기술도 원작이 지닌 신비한 아름다움을 되살리지 못했다.
부식되어 희미해진 그림 속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만일 그림의 색깔이 선명하게 살아있었다면 과연 '다빈치 코드'에서처럼 사도 요한을 막달라 마리아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책을 읽어 미술재료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면 '최후의 만찬의 비극'도, '다빈치 코드의 신화'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