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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이교수의 세상만사] 감자와 유럽, 그리고 코로나19 / 이길선(교양대학) 교수

  • 작성자 김해선
  • 작성일 20.02.28
  • 조회수 1467

감자를 직접 캐냈던 경험은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넓은 밭 땅속에서 호미를 이용하여 상처 안 나게 조심스럽게 수확 했던 일이 새롭다. 밭일은 힘들었지만 꽤나 재미있었다. 그 좁디 좁은 땅속에서 굴비 엮이듯 주렁주렁 딸려나오는 감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패스트푸드점의 감자튀김 다음으로 손으로 만졌던 최초의 감자이지 않았나 싶다. 감자는 튀겨진다는 점과 땅속에서 자란다는 점만이 내 감자 지식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점차 머리가 커지니 알게 된 사실. 감자라는 식물은 남미 안데스산맥 주변에서 시작하여 콜럼버스 일행이 아메리카 대륙에 뭣 모르고 상륙한 이후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생소한 모습과 맛에 당시 유럽인들은 감자를 엄청 푸대접했으며, 특히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유럽 종교재판에서 악마의 식물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유죄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기까지 하지만, 하느님께서 식물은 씨앗으로 번성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감자는 암수가 아닌 덩이줄기만으로 번식하기 때문에 판사가 유죄를 때린 것이다.

그런데 천덕꾸러기 감자가 유럽의 인구를 증가시키고, 유럽인이 육식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준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유럽은 한랭기후 탓에 매년 인간과 가축을 위한 식량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감자는-우리나라 강원도만 보더라도-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영양 또한 매우 높다. 특히 동일 면적 대비 생산량이 다른 작물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수많은 유럽 지도자들이 감자를 널리 보급하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의 백성들이 이 작물을 받아들이는 시기는 각양각색이었다. 

시간이 지체되었을뿐 한번 감자를 받아들인 나라는 백성들이 배 곯지 않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얻게 되었다. 유럽 각국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인구 증가가 산업혁명과 유럽의 세계 지배를 뒷받침했음은 당연했다. 

유럽의 겨울은 가축에게 먹일 먹이가 부족하여 사육할 수 있는 개체 수가 한정적이었다. 적은 양의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겨울에 단백질을 섭취하는 식문화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보존성이 뛰어나고 수확량이 많은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일 년 내내 돼지 기르는 것이 가능해졌다. 잡식성인 돼지는 감자를 잘 먹는다. 겨울에도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소득이 증가하였고 감자를 먹여 키운 돼지로 만든 햄, 베이컨, 소시지는 유럽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주었고 육식을 마음껏 즐기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좋은 일들만 생기지는 않았다. 아일랜드는 17세기 무렵 감자를 유럽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급속히 전국으로 퍼졌으며 감자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인구가 300만명에서 19세기 초 800만 명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하나의 식물이 이처럼 많은 인구를 증가시켰다니 대단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축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845년 9월부터 시작된 감자 잎마름병은 몇 년간 전국을 강타하여 생산량이 80~90% 감소하는 대폭락이 발생했다. 여러 감자종들 중 너무 단일 품종만 심어서 발생한 일이었다. 이 품종이 특정 질병에 취약해 전국의 감자가 모두 그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기아로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수 백만명의 아일랜드인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고향을 등지고 아메리카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현재 미국에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후손 중에 우리가 잘 아는 J.F. 케네디 대통령, 월트 디즈니, 맥도날드 형제 등이 있다. 

2020년 아일랜드 인구는 5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19세기 초보다 적다. 전염병의 결과가 이렇게 크다니 씁쓸하다. 모든 세상사에 음영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일랜드인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역사가 있다. 당시 부유했던 영국인들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음을. 이때 쌓인 분노의 감정이 아직도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남아 있음은 당연하다. 영국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 어려운 이들이 있는데 모른 체하고 돕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19 때문에 큰 어려움이 처해있다. 우리나라도 초기와는 달리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다. 바이러스는 언젠가는 물러날 것이며, 그 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 중국인들은 물론 대구·경북 주민들을 성심성의껏 돕지 않는다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잡힌 이후 우리의 도움이 한중간 관계를 돈독하게 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동서 화합을 이루지 않을까.

글 이길선 국민대학교 교수. 많은 이들이 공동체적 가치를 갖고 함께 도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정치·사회·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 벤처회사에 투자 및 조언을 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kdf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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