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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 지존들의 안티패션, 유니폼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3.03
  • 조회수 1242

지존들의 안티패션,
유니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과 엠블렘

지난 2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과 엠블렘의 새 디자인이 공개되었다.유니폼 후원업체인 나이키가 디자인을 맡았으며, “한국의 활기찬 문화와 한류를 표현했다”는 설명을 내 놓았다. 이 디자인에 대해서 축구팬들의 평가가 요란하다. 우리가 입는 옷들은 통칭하여 패션이라 불리는데, ‘패션’ 단어에는 변화라는 뜻이 있다. 이 변화의 주기가 유행이고, 우리는 이 유행의 물결을 타야만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하지만 이것을 거부하는 고정된 패션이 있는데 이를 안티패션이라고 한다. 전통시대에는 모든 복장이 안티패션이었다.왕은 왕의 옷을, 양반은 양반의 옷을, 농민은 농민의 옷을 입어야 했으며 이를 어기는 것은 곧 체제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기도 했다.

호랑이인가, 얼룩말인가?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안티패션의 힘과 영향력은 대단하다.가장 뚜렷이 남아있는 안티패션은 사제복과 승려복, 영국 여왕의 대관식복 등이며, 남자들의 수트와 넥타이도 역시 근대기에 새로 등장한 대표적 안티패션이다. 이외에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복, 예일이나 하버드 대학의 감색 수트와 미색 바지 등등 안티패션들은 의외로 많다. 이들은 차별성을 과시하기 위해 줄기차게 불변의 복장을 고집한다.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계에서 지존이기 때문이다. 왕족 중에서는 영국 여왕만큼, 정신계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사제들만큼의 지존이 어디 있겠는가? 유니폼 역시 특정장에서의 최고봉들의 안티패션이다. 국가대표 유니폼이 팬들의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 축구계의 지존들이 입어야 하는 옷이기 때문이다.

이번 원정 유니폼은 흰 바탕에 호랑이의 얼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이 되었다. 이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평이 “이것이 호랑이냐? 얼룩말이냐?”, “이것이 동물이냐? 아이스크림의 줄무늬냐?” 등이다. 한 유투버는 얼룩말이 뛰는 사진과 선수들이 뛰는 사진을 올려놓고 평을 한다. 이런 평을 듣는 이유는 이 디자인이 한국성이라는 추상적 명제에 매몰된 채 그보다 더 큰 범주인 ‘시각의 보편성’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얼룩말은 무조건 흰 바탕에 그려지지만 호랑이는 백호보다는 오히려 황호가 친숙해서 호피는 거의 황색 위에 그 패턴이 그려진다.호랑이가 국민 캐릭터인 것이 상식인 한국 내에서도 이런 평을 당하는데 세계로 나가면 어떻겠는가? 세계인들의 감성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잊었거나, 아니면 스토리텔링과 마케팅이 우세니까 그것으로 밀고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사실 마케팅 홍보를 통해 지속적으로 호감을 늘리겠다는 것이 축구협회의 변이기도 하다.

말의 설득 vs. 시각적 호소력
백호라고 명명된 엠블렘 또한 잠시 살펴보자. 이제까지의 엠블렘은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던 2002년부터 사용되었다.사실적으로 묘사된 호랑이가 푸른색 방패 위에 그려져 있는데 당시 축구공을 누르고 있는 호랑이가 순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그래서일까? 이번 엠블렘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흰 직사각형 가운데에 도식화된 형상의 호랑이가 놓여있다. 이 중 사각형은 축구장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전 엠블렘에 사용된 방패 형상은 유럽의 봉건 제후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방패에 가문의 문장을 새겨 넣은 것이 그 기원이다. 이외에 세계 대표팀들의 엠블렘에는 그들 만의 역사, 자랑, 추모, 특정 인물에 대한 존경 등의 스토리가 녹아있다.

서구 상징의 방패도 이제는 그만 써야 할 시대가 된 것 같으니,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공들인 그 시간은 인정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장을 사각형으로 그려 넣은 것은 일차적인 발상이다. 형상의 즐거움, 역사적 사건, 상징성 등 그 의미를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니 이런 일차원적 발상과 표현이 진부하게 다가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시지각의 원리이다. 호랑이의 형상은 구체적인 묘사를 버리고 심볼 마크 디자인의 트렌드인 단순화의 원리를 적용했다고 하며, 그 설명이 매우 길다.하지만 “말맛 단 집 장맛 달기 힘들다”는 속담이 의미하듯이 아무리 훌륭한 의미로 설득해도, 눈이 느끼는 보편적 감각을 부정하기는 힘들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스포츠 브랜드 ‘다이나핏’의 변형이고, 영화 <트랜스포머>의 ‘오토봇’ 심볼, 심지어는 <라이온 킹>의 캐릭터와 비슷해서, 사자인지 호랑이인지 모르겠다는 평이 대부분이다.여기저기 살펴보아도 긍정적인 반응은 거의 안 보인다.

한국 호랑이의 기상을 기대함
 하지만 이런 비평은 부수적인 문제일 것이다. 한국에는 두 가지 호랑이의 모습이 있다.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속에서 번쩍이는 눈동자, 팽팽히 긴장된 꼬리, 휘어진 등으로 최고의 격찬을 받는 호랑이,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육당 최남선이 펴낸 잡지 『청춘』(1914)에 그려 준 포효하는 호랑이가 있다. 이들이 그려내고자 한 것은 용맹과 기상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그 벽사와 수호신의 기상이 인간사에 좋은 의미로만 작용하기를 바라는 즐겁고 친근한 호랑이가 민화 속에 있다. 88 서울 올림픽의 ‘호돌이’, 평창 올림픽의 ‘수호랑’은 그 민화 속 호랑이의 후예들이다. 이번 유니폼과 엠블렘이 어떤 계열에 속하건 그것은 사실 축구의 본질과는 무관한 또 다른 문제이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태극전사들이 한국 호랑이의 용맹과 기상, 멋진 스포츠맨십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말 많은 유니폼도 엠블렘도 뒷전으로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의 기상을 어떻게 시각화했느냐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디자인계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을 것이다.

<송하맹호도>    
 

잡지<청춘>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2018년 『일상과 감각의 한국 디자인문화사』를 출간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