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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환경칼럼];사라져가는 名品 소나무들 / 전영우(산림자원)교수

  • 작성자 조선
  • 작성일 05.07.12
  • 조회수 5603

발행일 : 2005-07-02 A31 [여론/독자] 기자/기고자 : 전영우


북어 한 마리. 소주 한 병. 얼마 전 가봤던 강릉 소금강 초입의 천연기념물 350호 ‘명주 삼산리 소나무’에 바쳐진 제물(祭物)은 조촐했다. 수백 년 동안 신목(神木)으로 받들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초라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제물이지만, 그 애틋한 광경에 기뻤다.

지난 2년 동안 41곳의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찾아 강원도 설악동에서 제주도 산천단까지 방방곡곡을 누볐지만 이처럼 정겨운 광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말발굽처럼 둘러쳐진 야트막한 돌담. 높이가 두 자나 될까. 냇가의 자연석을 모아 병풍처럼 소나무 주변을 꾸민 솜씨가 소박하다. 소나무 바로 앞에 놓인 편평한 댓돌은 제단이다. 제단 아래엔 대여섯 개의 둥근 돌로 작은 단을 만들어 신격(神格)을 부여했다. 몇 개의 돌로 성(聖)과 속(俗)을 갈라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금지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삼산리 소나무의 터전은 이 땅의 다른 천연기념물 소나무들과 아주 달랐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사람과 나무 사이에 있어 왔던 정중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든 게 다른 지역 소나무들이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사람으로부터 격리시켜 놓은 것이다. 나무 주변 높은 철책이 사람과 나무 사이를 가로막았고, 그 결과 사람과 나무는 자연스런 소통과 교감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얼마 전 비참한 죽음을 맞은 천연기념물 353호 ‘서천 신송리 곰솔’이다. 이 땅의 곰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했던 이 나무는 3년 전에 낙뢰(落雷) 피해로 한쪽 가지가 먼저 죽고, 지난해에는 나머지 가지도 말라 완전히 고사(枯死)했다. 서천군은 이 곰솔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주변 부지를 정리하여 정자를 세우고 주차장을 새롭게 조성했다. 그러나 정작 나무의 안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낙뢰 대비용 피뢰침을 세우는 것은 간과했다. 주인공인 곰솔이 사라지면, 주변 편의시설이 다 무슨 소용일까?

더 안타까운 현실은 천연기념물 소나무들도 이 땅을 위협하는 생명경시와 물신주의(物神主義)의 거센 파고를 피해갈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잘못된 관리와 부주의한 보호로 충북 보은의 백송은 이미 고사했고, 독극물의 주입으로 전북 전주의 곰솔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또 보은의 정이품송과 정부인송, 경북 문경 대하리의 소나무는 지난해 폭설 피해로 예전의 아름답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체 천연기념물의 10%에 해당하는 소나무류는 한 번 감염되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재선충병의 위험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탐욕과 재해로부터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지켜낼 수 있을까? 관람객의 출입을 오랫동안 금했던 경복궁 경회루가 최근 개방되었다. 사람의 체취가 목조 문화유산의 보존에 필요하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사람의 관심과 체취를 기다리는 것은 자연유산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제도로 운영 중인 ‘문화유산해설사’처럼, ‘자연유산해설사’를 양성하여 자연유산과의 관계복원은 물론, 그 보호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보혁명의 광풍이 숨가쁘게 몰아치는 오늘의 세태에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명목(名木) 소나무가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고, 우리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자양분이며,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정체성의 코드를 간직한 생명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전 영 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