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경제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재도약에 나선 일본, 이와 대조적으로 침체 에 빠진 한국 경제. 올 연말 타결을 목표로 2003년 말부터 교섭을 시작했으나 협상이 중단된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한ㆍ일 양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내 셔널리즘. 매일경제신문은 이 같은 한ㆍ일간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보고 자 양국 교수 2명씩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를 열었다.
-최근 한국과 일본 경제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후카가와 교수=한국은 97년 말 외환위기를 당했으나 온국민이 힘을 합쳐 훌 륭하게 극복했다. 여러 분야에서 시스템을 고치고 시장 주도 형태로 바꿨다. 그러나 최근 한국 상황을 볼 때 다시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각 자가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과거엔 '노동자=약자'라는 공식이 성립했지만 지금의 대기업 노조 등을 볼 때 지금도 이 공식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후카오 교수=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즉 생산성 향상과 부가가치를 높이지 않고서 임금동결 등 비용절감만으로는 지 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은 정치적인 변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밖에서 보기에 는 어떤가.
△후카가와 교수=지금 한국은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이다. 기 업 부문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앴고 필요한 부분은 더욱 강화해 경쟁력을 갖췄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 사회를 볼 때 크게 두 가지 면이 염려된다. 우선 젊은이들 가운데 '일단 반대하고 본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한국 기업이나 산업 부문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일본 사례에서 참고할 만한 것은.
△후카오 교수=정부에서 사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사업가들은 다른 나라로 떠난다. 현재 일본 제조기업 중 40% 이상은 외국에서 물건을 만들 고 있다. 산업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 회장은 본사를 뉴욕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한다. 이런 점에서 '기업이 잘 된 다고 해서 자동으로 국가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후카가와 교수=한국 기업들이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과 소규모 중소기업으로 양분되고 있다. 이 둘 사이를 연결해 줄 중견기업이 없다. 한국은 이 점에서 일본과 다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 면 앞으로 고용이나 성장잠재력이 걱정된다.
-2003년에 시작한 한ㆍ일 FTA 협상은 당초 목표로 했던 시한이 5개월밖에 남 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국 관계까지 나빠져 협상 재개가 불투명한 상황 이다.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정인교 교수=우선 양국의 시각차와 정치지도자들의 불신을 들 수 있다. 한 국은 일본과의 FTA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선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 하고 한ㆍ일 FTA를 검토했다. 그러나 정책담당자들은 협상과정에서 이러한 목 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또한 일본측은 4명의 수석대표를 지정했다. 농업은 농업에 한해, 제조업은 제 조업대로 논의하고 있다. 단일 수석대표 체제를 변경하지 않고서는 협상이 진 전될 수 없다.
△이원덕 교수=FTA가 체결되려면 두 가지 측면, 즉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에 서 일정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ㆍ일 양국은 이런 점에서 협상 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ㆍ중ㆍ일 3국 모두 국민들 사이에서 내셔널리즘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원덕 교수=일본 내 내셔널리즘이 확산됐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서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정치가 들은 우익이 일본의 정치, 외교, 안보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 정치가들은 최근 한국 정치인들이 좌익 쪽에 가깝고, 중국 쪽으로만 기운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인교 교수=내셔널리즘을 지역적 협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리더십이 필요 하다고 본다. 이러한 지역적 리더십을 한ㆍ일 FTA로 구현하자는 공감대가 초기 에는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협상과정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일본에서 기 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됐다.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는 일본 보다 중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석자 = 후카오 쿄지 히토쯔바시대 교수 /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교수 / 정인교 인하대 교수 / 이원덕 국민대 교수 / 사회 = 김대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