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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112m 우뚝 솟은 아파트, 울창한 숲을 닮았네 / 장윤규(건축학부) 교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택
코로나19 사태는 건축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스테파노 보에리의 ‘수직 숲’ 아파트. [사진 각 건축사무소]
.건축은 우리의 삶을 담아내고, 또 때로는 변화시키는 그릇과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건축과 도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사회적, 혹은 일상 속 거리 두기가 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사람들이 북적대던 장소와 공간이 해체되고 있다. 건축의 프로토타입(Prototype·원형)이 달라질 전망이다. 20세기 공동 주택을 대표하는 아파트 문화 역시 예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재난은 새로운 주거문화 낳아
20세기 아파트도 2차대전 산물
자연환기·채광 시스템 중요해져
식물 가득한 테라스 정원 필수적
르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옥상 정원. [사진 각 건축사무소]
사실 아파트라는 주거 유형도 제2차 세계대전 재난에서 비롯했다. 전쟁이 낳은 폐허를 극복하고 수많은 사람을 수용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생겨났다. 특히 근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전후 유럽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이라는 아파트형 건축을 제시했다. 개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동시에 사회적 교류를 보장하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삶에 방점을 찍었다. 구체적으로 ①미리 입체적으로 조합된 23종의 유닛(Unit·구성단위) ②빛을 조절하는 차양 시스템 ③옥상 정원의 커뮤니티 ④중간층에 조성된 쇼핑 거리 ⑤필로티(Piloti·벽면 없이 기둥으로만 설치된 개방형 구조)를 통한 공공적 도시 공간 등을 설계했다.
요즘 우리는 엄청난 속도의 격변기에 살고 있다. 과거 공동주택이 이웃과의 커뮤니티 회복을 시도했다면 이제는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야 한다. 환경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추세를 재촉하고 있다.
르코르뷔지에가 제시한 선구적 모델
코로나19는 기침·재채기 등에서 나온 바이러스 비말(호흡기 분비물)로 감염된다. 문제는 비말이 너무 가벼워 1시간 정도 공기 중에 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밀폐된 공간일수록 위험성이 증폭된다. 그래서 주택에서도 자연환기와 자연채광이 더욱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파트 같은 집합주택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향후 집합주거의 핵심 이슈는 ‘집 안팎의 숲’으로 수렴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기정화와 자연환기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의 ‘수직 숲’(Vertical Forest)은 인간과 숲이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고층 아파트의 좋은 선례가 된다. 그가 2014년 밀라노에 선보인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가 대표적이다.
보에리는 식물과 동물이 다양하게 어울리는, 숲속에 있는 듯한 ‘타워형 주택’을 시도했다. 실제로 숲은 유해 미생물을 억제하는 살균작용을 지니고 있다. 그 어떤 약보다 치유 효과가 뛰어나다. 천연항생제, 피톤치드를 한번 생각해보라.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아파트에 숲의 개념을 끌어들였다. 생물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80m와 112m의 두 개 타워로 구성됐는데, 중간 크기 나무 80그루와 작은 나무 300그루, 피복 식물 1만1000개, 관목 5200그루가 들어갔다. 갖은 종류의 식물이 수직적 환경을 이루고, 조류와 곤충이 서식할 수 있는 도시 생태계가 형성됐다. 탁한 대기에 포함된 미세입자를 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다양한 식물은 주택 안팎의 습도·온도를 조절하고 이산화탄소 입자를 흡수하며 산소를 생성한다. 방사선 및 소음 공해로부터도 사람들을 보호한다.
보에리는 각계 전문가와 협업했다. 식물학자·생태학자 그룹과 3년간 함께 연구하며 파사드(façade·건축물의 정면) 방향과 높이에 알맞은 식물을 선택했다. 건물 내부의 식물은 발코니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원예원에서 사전 재배했다. 덕분에 이산화탄소가 대폭 감소했고, 에너지 낭비와 도시 열섬 효과도 줄어들었다.
비아케 잉겔스의 ‘마운틴’ 공동 주택. [사진 각 건축사무소]
덴마크 건축가 비아케 잉겔스가 코펜하겐에 완성한 ‘마운틴’(Mountain Dwellings)도 전원적 삶을 겨냥했다. 테라스 주거 공간과 하부 주차장 공간을 입체적으로 꼬았다. 아파트 80개와 자동차 480대를 수용하는 주차 공간을 조밀하게 융합해 산 모양의 입체적 단지를 만들었다. 모든 집마다 햇빛이 쏟아지는 테라스 정원을 배치했다. 전망에도 신경을 써 개별 주택들도 도시를 내려볼 수 있도록 마치 블록처럼 쌓았다. 테라스와 테라스가 연결된 옥상 정원에선 계절별로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자라게 했다. 개별 아파트와 정원에 필요한 물은 공동 급수 시스템에 의해 공급된다. 지속가능형 주택의 실험이다.
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의 ‘세이조 하우징’. [사진 각 건축사무소]
집은 무엇보다 사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집합주택에선 복도·엘리베이터 등 공용 공간도 필수적이다. 대개 공용 공간은 밀폐되기 쉬운데 앞으론 자연환기가 가능한, 다시 말해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선보인 가든 코트 하우징(Garden Court Housing) 프로젝트 시리즈가 흥미롭다. 그중 하나인 세이조 하우징(Seijo Housing)은 개인주택 같은 소단위 공간을 재구성해 자연을 닮은 밀집주택을 빚어냈다.
단독주택 같은 공동주택 늘어날 듯
세이조 하우징은 20개 건축물이 2~3층으로 구성됐다. 언뜻 보면 단독주택을 모아놓은 것 같은데, 14개 유닛이 개별 건물들을 연결해 각 주택 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방 단위로 나뉜 박스형 주거 공간을 최대한 마당과 접하도록 해체·재구성했다. 침실·주방·거실 등 모든 방이 한 개 이상의 마당과 함께 숨을 쉬는 구조다. 모든 유닛에는 정원과 옥상 테라스가 마련됐다. 광장으로 열린 정원, 작은 골목처럼 삐걱거리는 정원, 햇빛으로 가득찬 정원, 중정으로 닫힌 정원 등 서로 독립적이되 하나로 만나는 형태다.
노르웨이 건축학자 노르베르그 슐츠는 ‘거주’라는 개념을 탐구했다. 그는 “장소(사는 곳)는 구체적 실존이다”라고 했다. 주택이란 지붕 아래 면적을 뜻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생각과 대화, 그리고 느낌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거주자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야 하다고 설파했다.
슐츠의 생각을 발전시켜 본다. 서로 동떨어진 나만의 아파트가 아닌 ‘땅을 분양하는 아파트’를 제안한다. 각자 분양받은 땅에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단독주택을 짓는다. 개인적 실존을 보장한 주거 시스템이다. 그리고 자연 환기·채광을 극대화한, 열린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 구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인간의 정신성을 높이는 기계
“위대한 시대가 시작됐다. 거기에는 새로운 정신이 존재한다. 정해진 목표를 향해 밀려오는 대하와 같이 우리를 압도하는 산업은 새로운 정신으로 활기를 띠게 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도구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근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사진)가 1923년 발표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의 한 대목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건축을 설파했다. 르코르뷔지에는‘건축은 삶을 닮는 기계’라 했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예술과 건축을 강조했다.
건축과 기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뤄왔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건축을 배태한다. 르코르뷔지에는 현재 지구촌을 휩쓴 바이러스 대재난에 대응하는 새로운 기계로서의 건축을 예고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기계는 과학적이면서도 감성적이다. 인간의 정신성을 조율하는 역할까지도 맡아야 한다.
그 역할의 중심에는 자연과 환경이 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준비하는 각계의 논의가 뜨거운 지금, 건축 또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르코르뷔지에의 말을 재차 인용한다.
“주택 문제는 시대의 문제다. 오늘날 사회의 균형은 이 주택 문제에 달려 있다. 주택에 대한 케케묵은 생각을 지워버리고,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자.”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77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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