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25일 국민에게 보낸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는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저는 대한민국 새 정부를 운영할 영광스러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올리면서 이 벅찬 소명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완수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취임사는 이어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우리 민족의 저력과 도전정신을 찬양했다. 끊임없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도 민족의 자존과 독자적 문화를 지켜왔고, 분단과 전쟁과 가난을 이기고 세계 12대 산업대국으로 성장했음을 자랑스럽게 평가했다. 그러나 세계사의 급속한 변화의 격랑 속에서 다시 ‘도약이냐 후퇴냐, 평화냐 긴장이냐’의 기로에 서있는 오늘의 현실을 깨우쳐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동시에 이제까지의 난국을 극복해 온 국민이 힘과 지혜를 합칠 때 오늘의 위기를 발전의 계기로 도약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만들어 갈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동북아시대의 중심국가, 한반도의 평화정착, 한·미동맹의 공고화, 미래지향적인 건강한 사회 건설, 경제의 지속성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우선하는 정치, 복지의 내실화 등등 이 청사진을 구체화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제시했다. 특히 대통령은 정치의 개혁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대화와 타협을 정착시키는 정치를 주장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정치안정과 경제발전, 밖으로는 국기(國基)를 튼튼히 하고 국격(國格)을 높여 21세기 동아시아를 이끌 선진한국의 기초를 다질 것을 다짐했다.
국민대통합을 촉구하는 취임사는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우리 국민은 마음만 합치면 기적을 이루어내는 국민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읍시다.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새 역사를 만드는 이 위대한 도정에 모두 동참합시다. 항상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새 시대의 도래를 담은 노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선거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국민까지 새 대통령의 취임을 환영했고, 참여정부의 출범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92%라는 국민적 지지가 이를 말해주었다.
그러나 반환점을 지난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초라한 모습이다. 그리고 출범 당시 그렇게 강조했던 국민의 뜻에 역행하고 있다. 진심인지 정치적 언어인지 모르지만 노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과 함께 완수할 ‘벅찬 소명’을 여러 차례 부인했다. 또한 위대한 선택을 한 국민은 오늘에 이르러 ‘과감한 거역’의 대상이고, ‘독재시대의 문화’에 젖어 있고, 대붕(大鵬)의 뜻을 모르는 ‘참새’로 전락했다.
참여정부는 국민과 약속한 국가운영의 기본방침을 정책화하는 데 실패했다. 시행착오와 정책적 혼돈은 결국 성장 잠재력을 둔화시켰고 서민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참여정부가 강력한 무기로 삼았던 도덕적·개혁적 생명력은 정권을 잡으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쇠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지지가 20%대로 추락한 것은 총체적 국정난맥과 국민의 신뢰상실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이다.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연정(聯政)’정국의 소용돌이가 또 다시 선거제도 개편 정국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국민은 염려하고 있다. 국민은 정치지형의 변화보다 멎어가고 있는 성장 엔진을 재가동시키고 국민과 약속한 국정지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민생 경제가 윤택해지고, 사회적 양극화가 해소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정착하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음만 합치면 기적을 이루는 국민’이라는 대통령의 확신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왜 국민이 참여정부를 선택했나를 되새겨보고 취임사에 나타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도 짧지 않은 29개월의 임기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