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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작곡가이자 공연연출가 김기영 교수

  • 작성자 한겨레
  • 작성일 05.10.07
  • 조회수 7561
작곡가이자 공연연출가 김기영 교수



[한겨레 2005-10-06 14:39]







“음악교육 없는 무용교육 껍데기” 대한민국 무용계에서 김기영(49) 국민대 교수는 매우 독특한 풍경에 속한다. 작곡을 전공한 음악가이지만, 무용 연출을 가르친다. 소속도 음악학부가 아니라 공연예술학부다. 그는 무용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안무가와 공동작업을 하는 공연연출가다.


세계적 무용가 홍신자의 <윤무>를 비롯해, 중견 안무가 안애순의 <하얀나비의 비명-아이고>, 차세대 유망 안무가 김윤진의 <욕망>, 연극연출가 김아라씨의 <덫-햄릿에 관한 명상> 등을 함께 만들었다. 세계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가 그의 음악을 쓰기도 했다.



대위법 비밀 푼뒤 무용의 길“삶이 예술” 존 케이지에 감화여행족처럼 살려 인사동 거주 대학 4년 내내 그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음악에 ‘대위법’ 같은 법칙이 있어야 하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가르치고 외울 뿐, 그 정신적 뿌리는 알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 것도 그런 갈증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대위법이라는 것은 교회에서 나왔더군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음악을 들으면 사람이 흥분되잖아요. 대위법은 그런 ‘심적 도약’을 못하도록 억누르는 법칙이었어요.” 서양음악의 비밀을 알아버린 그는 음악이 아닌 다른 세계, 무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존 케이지였다. 존 케이지는 ‘포스트모던 댄스의 아버지’ 머스 커닝햄의 음악적 동지로 유명하다.



그 자신,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해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김 교수가 홍신자씨를 처음 만난 것도 존 케이지 ‘덕분’이다. 홍씨가 존 케이지와 함께 일했던 사실을 알고 있던 김 교수는 1993년 귀국하자마자 홍씨에게 연락을 했다.



“예술은 삶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며, 일상 속에서 예술을 실천해야 한다는 존 케이지의 예술 및 인생철학은 제 인생의 사표가 됐습니다.



사실 삶 자체가 예술 아닙니까?” 그의 타고난 ‘아웃사이더 기질’은 “극단적 아카데미즘에 빠져 부르주아들의 전형적인 놀이로 전락한” 한국 작곡계를 저주하게 만들었다. 그가 인사동에 사는 이유도 ‘주류’가 되기 싫어서다.



인사동은 외국 배낭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 사회의 이방인 같은 존재”다. “아파트는 개인성의 거대한 침몰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여행자처럼 살고 싶어요. 개성과 다양성을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떼로 몰려다니는 게 싫어서죠.” 존 케이지에게서 감화받은 그의 예술관은 “예술이란 명예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정화의 수단”이라는 ‘종교적 단계’로까지 진화했다. 5~6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재공연되는 김윤진의 <욕망>은 그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그는 이 작품에서 원초적인 소리, 인간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우리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지나치게 풍요로워요. 그런 과잉은 파괴를 낳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원초의 정신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소리의 궁극적인 개념으로 들어가 봤어요. 소리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죠.” 무용수들이 헨델의 메시아 중 아리아를 부르기도 한다. 창작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음악적 재활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음악 교육이 없는 우리나라 무용 교육은 죽은 교육입니다. 무용을 전공하는 대학 2학년생이 바하 평균율 제1번에 나오는 서곡을 모를 정도니까요.



기본 소양을 가르치지 않고 동작 학습에만 치우쳐 있죠.” 국민대가 지난 5월 그를 교수로 초빙한 것도 우리나라 무용 교육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오페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한국 음악계와 무용계의 이단아 김기영의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글·사진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