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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건축과 저작권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6.10
  • 조회수 1132

지난달 10일 대법원은 건축 설계에 관한 중요한 판결을 확정했다. 경남 사천의 한 카페 건물이 강원도 강릉의 유명한 카페의 저작권을 침해했으며 건축사에게 50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이다. 강릉 건물이 먼저 지어졌고 상도 받고 유명해서 저작권으로 보호할 만큼 독창적인 것인데 이를 베껴서 따라 지은 것이므로 위법이라는 것이다. 건축에서 저작권 침해 또는 표절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 김수근의 부여박물관 논쟁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표절보다는 분위기가 ‘왜색풍’인 것이 문제였다. 90년대 몇몇 건축가가 일본 건축가를 대놓고 모방해서 원본과 복사본을 나란히 게재한 잡지 기사가 화제가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원작자가 외국인이었던 때문인지 별다른 논쟁도 처벌도 없이 지나갔다. 이후로도 표절 혐의가 짙은 건물의 사례들이 있기는 하지만 주변 환경과 용도가 다르며 완벽한 복제품은 아니므로 고발이나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판결이 흥미롭고 중요한 몇 가지 점이 있다. 첫째, 건축 설계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판결은 구체적으로 외벽과 지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정면 전체를 유리로 시공한 정도의 사실로 저작권이 성립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를 모방했을 경우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둘째, 저작권을 침해했을 경우 벌금은 500만원이 적절하다. 수십억원이 드는 건축 공사 규모를 생각해 보면 극히 적지만 범죄자가 된 건축사로서는 명예에 심각한 상처로 받아들일 수 있는 판결이다. 마지막으로 저작권을 침해했을 경우 처벌 대상은 건축주나 시공자가 아니고 건축사라는 점이다. 건축사는 억울한 입장이겠지만 창작자로서 건축사의 역할과 지위를 명시했다는 점에서는 전체 건축 커뮤니티가 각성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법원의 판결이 무성의해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보기에는 대법원은 2심을, 2심은 원심을 고민 없이 확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 청취가 있었겠지만 치열하고 깊이 있는 토론은 아니었던 느낌이다. 핵심은 강릉의 피해 건물이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만한 온전한 창작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다. 아름답고 우수한 건물이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독창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 지붕과 벽이 일체로 말아 올린 듯한 설계는 지난 세기말쯤부터 네덜란드 등에서 시작돼 수많은 국내외 건물이 차용한 일종의 건축 어휘로 자리를 잡았다. 더구나 전면의 유리나 1, 2층 사이를 개방한 설계안은 무수히 많아 건축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건물을 열 채쯤은 쉽게 가져올 수 있을 정도다. 독창적이며 배타적인 권리로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표절을 혐오하고 독창적인 창작물은 찬양하지만, 건축에서 표절의 문제는 독특한 창작물과 ‘건축 어휘’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의 관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일상의 단어를 모아 시가 되듯 보편적인 건축의 요소를 모으는 것이 설계의 과정이다. 단어가 같다고 표절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판례로 남아 건축 설계를 위축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 중요한 판결에 모두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관련 단체도, 건축가들도, 학자들도 입장을 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요란하던 댓글 창도 조용하다. 한 가수의 대작 의혹 사건의 공허한 공방이 부러울 지경이다. 새 자동차나 휴대전화 디자인이 발표될 때마다 또는 부동산 관련 기사마다 매달리던 댓글의 개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조용하다.

“건축은 중요한가?” 미국의 타임지가 차세대 리더로 선정한 100인 중 한 명인 건축가 김진애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책을 통해 건축과 도시를 알면 삶이 풍부해진다고 주장한다. 텅 비어 있는 기사 댓글 창을 보며 다시 묻게 된다. 건축은 중요한가?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1950&code=11171426&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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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