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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① 정밀주조기술 활용… 드라이버 헤드 30% 키운 ‘빅 버사’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6.24
  • 조회수 864

■ 골프를 바꾼 5가지 장비

② 헤드 가운데 파내 중량 줄인
 현대 퍼터의 원형 ‘앤서 퍼터’

③ 주조공법 ‘캐비티 백 아이언’
인기끌며 업계표준 자리매김

④ 3피스 ‘솔리드 코어 골프공’
우즈가 사용하면서 널리 퍼져

⑤ 골프공 추적 ‘론치 모니터’
클럽 설계·피팅 획기적 변화

축구처럼 공 하나만 있어도 경기가 가능한 종목이 있지만, 골프는 공은 물론 큼직한 백에 14개나 되는 클럽을 싸 들고 다녀야 한다. 많은 장비를 사용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경기력에서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수백 년이 넘는 골프의 역사에서 골프 장비의 설계와 개발에 첨단과학과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디자인과 제조 방식을 고수하며, 주로 장인들의 눈대중과 손 감각에 의존해 클럽을 만들어왔다.


시작은 퍼팅으로 애를 먹던 한 주말골퍼의 고민에서 비롯됐다. 제네럴일렉트릭(GE)의 엔지니어였던 카스텐 솔하임은 퇴근 후 직장 동료와 어울리기 위해 비교적 늦은 42세에 골프를 배웠다. 지역 볼링 챔피언에 오를 만큼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솔하임이었지만, 그에게 골프는 쉽지 않았다. 엔지니어답게 골프클럽을 꼼꼼히 분석하던 솔하임은 자신이 왜 공을 똑바로 칠 수 없는지를 곧 깨닫게 됐다. 헤드 가운데 부분을 파내 중량을 줄이고 대신 양쪽 끝의 중량은 늘리는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퍼팅이 훨씬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모든 현대 퍼터의 원형으로 1966년 출시된 ‘앤서 퍼터’다.

솔하임은 내친김에 아이언 클럽에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1969년 전통적인 단조공법이 아닌 정밀주조공법을 이용해 제작한 캐비티 백 아이언이 처음 출시됐다. 전통적인 단조 머슬 백 아이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다루기 쉬운 주조 캐비티 백 아이언은 골퍼들에게 인기를 끌며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퍼터와 아이언에 이어 우드에서도 엄청난 기술적 혁신이 일어난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엘리 캘러웨이는 은퇴 후 골프로 소일하다 우연히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 작은 골프용품 회사를 인수하고 65세에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다.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획기적인 신제품이 필요하다는 잘 알고 있던 캘러웨이는 당시로는 드물게 공학을 전공한 젊은 엔지니어들을 영입, 개발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골프의 역사를 바꾼 드라이버, ‘빅 버사’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 시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독일군의 초대형 대포에서 이름을 따온 빅 버사는 정밀주조기술을 이용해 기존 드라이버보다 헤드 크기를 무려 30% 이상 크게 만든 제품이었다. 빅 버사의 등장으로 드라이버 헤드 크기 키우기 경쟁에 불이 붙었고, 이 덕분에 골프는 한결 쉬워졌다.

1899년 단단한 고무 코어에 고무줄을 감아 만든 해스켈 공이 처음 등장한 이후, 거의 100년 가까이 골프공의 구조와 성능에는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다. 1996년 미국의 톱플라이트에서 현재와 비슷한 3피스 구조의 솔리드 코어 골프공을 최초로 내놓았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기존 공의 성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0년 미국의 타이거 우즈가 나이키, 브리지스톤이 함께 개발한 새로운 공으로 US오픈을 비롯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3개의 메이저대회를 잇달아 제패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모든 프로가 3피스 솔리드 코어 골프공을 찾기 시작했다. 반발력이 큰 솔리드 코어와 높은 백스핀의 부드러운 우레탄 커버를 결합한 3피스공은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라는 골프의 오랜 꿈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서게 했다.
덴마크 국가대표 출신의 아마추어 클라우스 요르겐센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친 공이 어떻게,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도 모른 채 연습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미사일추적 레이더 장비를 만드는 한 방산업체를 찾아 상담했는데, 골프를 좋아하던 1명의 기술자를 제외하고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 코웃음을 쳤다. 레이더 장비 한 대의 가격이 무려 30억 원이었기 때문이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2003년 트랙맨이란 이름의 론치 모니터 개발에 성공했다. 미사일을 추적하는 원리를 그대로 골프공 추적에 적용한 론치 모니터는 골프공과 클럽의 움직임에 대한 수십 가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장비다. 론치 모니터의 등장으로 클럽 설계 및 피팅, 그리고 골프 교습에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스윙을 바꾸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클럽의 무게와 로프트를 찾는 것만으로도 비거리가 늘어났으며, 수십 년 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9가지 공 비행의 법칙도 오류로 드러났다. “측정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 없다”란 상식이 골프에서도 비로소 통하게 된 것이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62201031839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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