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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보다 외모 따지는 미디어·후원사, 선수의 장래 망친다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사라져야 할 외모지상주의
성 상품화·선정 보도 앞장 매체
은근히 성형수술 강요하는 스폰서
외모에 신경 써 경기력 악화 불러
불필요한 살빼기로 비거리 줄기도
예쁜 외모 아닌 ‘검게 탄 발목’이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이 된 이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가 어렵사리 출발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얼마 전 매우 기이한 현상 하나를 경험했다. 성적이 저조해 컷 탈락한 두 명의 골퍼가 우승을 다투던 상위권 골퍼들보다 더 화려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인터넷 골프뉴스 면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한 것이다.
두 골퍼는 운동선수로는 드물게 매우 육감적인 몸매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두 선수를 다룬 기사 대부분은 경기 내용, 플레이와 무관한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사진과 선정적인 외모 품평 일색이었다. 여성의 성을 매개로 높은 조회 수를 노리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저질 기사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들의 노림수가 통했는지 이들 기사는 높은 조회 수와 엄청난 댓글 세례를 받았다. 기사에 달린 댓글 역시 기사 내용 못지않게 두 골퍼의 외모를 두고 낯 뜨거운 성적 표현이 난무하는 등 성희롱에 가까운 막말이 가득했다. 잘생긴 외모의 스포츠 스타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팬들의 높은 인기를 끄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컬러TV 시대 개막과 함께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와 친근한 이미지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대중적 인기를 촉발한 아널드 파머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플레이보다 외모나 몸매 평가에 치중하는 골프 매체들의 보도 행태는 스포츠의 본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느낌이다. 운동선수를 한갓 성적인 볼거리나 눈요깃감으로 대상화하고, 골프팬들에게 여자골프와 여자선수에 대한 왜곡된 성적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조장할 위험이 크다.
더 우려스러운 건 이러한 매체의 보도들이 우리 사회가 지양해야 할 외모지상주의와 성 상품화 풍조를 오히려 강화하고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여자선수의 여성미나 섹시함에 초점을 둔 선정적인 사진과 기사로 대중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면,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마케팅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이는 다시 선수들에게 영향을 끼쳐 자신의 외모와 성적 매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이를 언론이 다시 기사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한국투어에서 많은 선수가 후원계약을 앞두고 비시즌 기간에 성형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투어 데뷔를 앞둔 앳된 얼굴의 10대 여자선수들이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연습장이 아닌 성형외과부터 먼저 찾는 것이 한국투어의 슬픈 현실이다. 선수들은 성형수술을 후원 기업을 구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로 인식할 정도다.
관련 인터뷰에 따르면 성형수술은 기업과의 후원계약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선수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후원 기업이나 소속 매니지먼트사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한 경우도 상당하다.
언론과 기업들이 선호하는 여자선수의 외모가 주로 남성 일반의 시각에서 철저하게 대상화되다 보니 스포츠와 상관없는 날씬한 몸매나 비정상적인 신체비율을 요구할 때가 많다. 비거리에 악영향을 주는 다이어트를 서슴없이 강요하기도 한다. 여자골퍼를 운동선수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얘기다.
선수들의 처지에서는 골프 실력과 외모 두 가지를 모두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외모 관리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와 관심을 쏟게 됨으로써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외모지상주의와 성 상품화의 폐해는 남자선수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배우 못지않은 외모로 인기를 끈 한 남자골퍼는 데뷔 때부터 줄곧 자신을 따라다닌 ‘꽃미남 골퍼’ ‘얼짱 골퍼’란 별명이 부담스럽다며 외모보다는 골프 잘 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토로한 바 있다.
독자들의 관음적 욕구 충족에 골몰하면서, 근거도 없이 국내 투어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호도하며 은근슬쩍 자신들의 질 낮은 기사를 합리화하는 일부 골프 매체의 보도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경기력이 아닌 외모를 우선으로 후원계약 선수를 선정하는 기업들의 시대착오적인 관행 역시 바뀌어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골프를 즐기는 여성들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여자프로골프를 있게 한 것은 결코 골퍼의 섹시한 몸매나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진정한 스포츠의 가치와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 22년 전 연못 둔덕에 떨어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었던 한 여자선수의 새카맣게 탄 발목과 눈이 부실 만큼 새하얀 발이었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21&aid=000243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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