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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DT시론] 싸워야 큰다? / 김현수 BIT대학원장 (한국SI학회 회장)

  • 작성자 장상수
  • 작성일 05.12.23
  • 조회수 5921
[디지털타임스 2005-12-23 02:59:55]

김 현 수 국민대 교수ㆍ한국SI학회 회장

사학법 개정으로 인한 파행 정국과 줄기세포 논쟁으로 인한 연구계의 혼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한 고통스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싸워야 큰다는 옛말대로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내면 우리는 강한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삶의 시기중의 하나로서 싸워야 성장함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춘추시대 초기에 제후국은 무려 170개국이었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많은 국가들이 소멸되어 전국시대 초기에는 20개국만 생존하였고, 전국시대 중기에는 7개국이 살아남았다. BC 221년 진나라가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중국의 역사를 열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전략과 전술이 개발되었고, 수많은 사상이 탄생하고, 기술이 발전되었다. 인류 역사 전체에서 가장 많은 산출이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서양 역사에서도 로마의 공화정 말기 혼란기에 가장 많은 진보가 있었으며, 아우구스투스 이후 200년간의 최전성기 팍스 로마나의 기틀을 마련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떻게 싸우는 것이 발전으로 이어지는 싸움인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야 발전한다. 전부를 걸지 않고, 딴지나 거는 식으로 어설프게 싸워서는 고통의 시간만 연장할 뿐이다. 전부를 걸고 싸우는 자는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최후의 승자인 진나라가 그러하였다. 당시 진은 후발 국가였고, 척박한 땅인 섬서성 시안 지역을 근거로 하고 있어 환경조건이 매우 열악하였다. 더구나, 당시 동방 제후들은 진을 오랑캐로 여기고 왕래를 수치로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진의 생존전략은 우수한 인재를 널리 구하는 것이었다. 출신국가를 따지지 않고 좋은 인재를 널리 구하고 등용하였는데, BC 361년 효공때 등용한 상앙이 대표적 인물이다. 상앙은 위나라 출신으로서 진으로 와서 부국강병책을 펼쳐 물산을 풍족하게 하고, 사회를 안정시켰다.
진시황이 된 이정이 즉위할 때에는 이미 진나라가 중국 천하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6국은 모두 쇠약해 있었다. 진왕 정도 타국 출신을 추방하라는 대신들의 요구를 듣지 않고, 초나라 말단관리 출신인 이사를 중용하여 천하통일을 달성하였다. 이사는 책략과 군대를 동원하여 10년 사이에 6국을 모두 멸망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진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포기하고, 오로지 실력과 역량에 의해서 타국의 우수 인재를 영입하여 결국은 자신의 국가를 살린 것이다. 자신의 밥그릇을 자국 출신 인사에게 보장해 준 후, 나머지 수단을 가지고 싸움에 임했던 멸망한 다른 나라들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서양 역사에서도 로마의 성공원인을 로마의 개방성에서 찾는다. 즉 실력 있는 이방인을 로마인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적 이민정책에서 로마의 힘이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의 이민정책이 로마를 답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장기 생존의 원동력에 대한 공감대가 서양사회에서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세계나 소프트웨어산업이나 모두 경쟁이 치열하고 동태적인 특성을 가지는 부문이다. 이런 부문일수록 흐름을 정확히 읽고, 전부를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자. 시대의 흐름을 치열하게 읽고 있는가? 그리고 딴지나 걸어 상대가 넘어지면 좋고, 안되더라도 내 자리는 보장되는 어설픈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곳에 어떻게 발전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