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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자부심에 눈멀다” / 김환석 (사회학과) 교수

  • 작성자 장상수
  • 작성일 06.01.25
  • 조회수 6451

[한겨레 2006-01-24 18:30] 

일부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를 보면, 황우석 교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70%나 된다고 한다. 지난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는 2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황 교수의 연구 재개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1월22일치 <뉴욕타임스>는 이 집회를 전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황 교수의 커다란 사진액자 옆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의 사진 아래 “자부심에 눈멀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발표로 과학계의 결론은 이미 내려진 상태인데 반해, 일반 대중은 황 교수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지금 일부 사람들은 더욱 열성적인 황 교수 지지파가 되고 있다. 이제 국내외 언론은 왜 우리나라의 일반 대중이 이런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논문 조작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막무가내로 황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마 황 교수는 원균의 모함으로 박해받는 이순신 또는 제자의 배신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예수의 이미지로 떠오를 것이다. 오로지 국가를 위해, 난치병 환자를 위해 숭고한 일에 몸 바치던 위인을 난자 윤리 또는 논문 조작이란 ‘사소한’ 트집을 잡아 매장하려는 무리야말로 이들에겐 매국노요, 악마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과학계에서 뭐라고 하건 이제는 황 교수를 믿고 사랑하는 대중들이 직접 나서서 그를 살리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황 교수를 살리는 일이 곧 대한민국을 살리는 ‘애국’의 길이라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으면서.

문제는 과연 이와 같은 황 교수 살리기가 곧 애국이며 소위 ‘국익’을 위하는 행위인가에 있다. 황 교수 지지자들이 믿는 것처럼 줄기세포 원천기술이 있고 그것을 설사 재연할 수 있다 해도 황 교수가 국제과학계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난자 제공과 관련한 윤리를 어겼고, 논문 조작이라는 과학적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또 이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미 과학자로서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황 교수를 엄격히 처벌하여 자정능력이 있음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국제과학계에서 영영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계속 미련을 갖고 매달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생명공학을 위하기는커녕 공멸을 재촉하는 결과를 빚을 뿐이다. 황 교수 지지자들은 이제 자신의 행동이 진정 나라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황 교수 개인을 위한 것인지 냉철히 판단할 때가 되었다.

더 나아가서 애국주의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심해봐야 한다. 일제 식민통치를 경험하고 이후에도 계속 강대국에 종속되어 고통스러운 역사를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애국주의가 한번도 진지한 반성의 대상이 된 적은 없는 것 같다. 파시즘의 비극을 경험해본 서구에서는 애국주의가 단순한 ‘선’은 아니며 오히려 개인이나 타민족의 인권을 탄압하는 무기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자각하고 있지만, 우리는 강대국의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해서인지 애국주의에 어떠한 경계심도 갖지 않는다. 월드컵 4강에 열광했던 그 애국주의 코드에 ‘세계적 과학자’ 황우석은 국가적 자부심을 더해주는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이 시대에 애국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윤리보다 더 중요한지 이제는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반성 없는 애국주의는 서구건 우리건 파시즘과 그리 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