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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윤동호의 눈]공수처 사용설명서 / 윤동호(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7.29
  • 조회수 733

신제품의 출시가 늦어지고 있다. 제품명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다. 형사 절차에서는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검찰이라는 기존 제품과 경쟁하기 위해서 올해 초 국회가 여야 합의로 출시하기로 했음에도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의 시행일인 7월 15일을 넘겼다. 공수처의 출범 준비는 모두 마친 상태다.

공수처법에 적힌 ‘제품설명서’를 보면 신제품의 출시 절차는 까다로운데 그 성능은 미약해 보인다. 기존 제품 애용자가 대언론 홍보력을 십분 발휘하여 신제품의 부작용을 부각시키고, 경쟁력을 과대평가해 출시 전부터 지나치게 경계했기 때문이다.

먼저 공수처장 임명절차가 까다롭다. 국회에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하는데, 이 위원회에는 야당의 교섭단체가 추천하는 2명이 포함돼야 한다. 다음은 이 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하는데,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에야 임명할 수 있다. 공수처장 임명과정에서 국회의 검증을 두 번이나 받는 셈이다.

공수처장과 공수처 차장을 제외하고 공수처 검사는 23명, 공수처 수사관은 4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는 약 7000명이다. 2018년 기준, 검사는 2066명이고 검찰수사관은 5500명이다. 경찰의 수사 인원은 약 1만5000명이다. 또 공수처는 검찰·경찰과 달리 독자적인 디지털포렌식센터도 없고,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기능도 없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와 공직오남용범죄(공직범죄)’에 대해서만 수사할 수 있다. 그래서 기소권은 더욱 제한된다. 사법권력자(대법원장·대법관·판사·검찰총장·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의 공직범죄만 기소할 수 있다. 반면 검사는 그 밖의 모든 범죄를 기소할 수 있고, 직접 수사 범위는 매우 넓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산업범죄, 대형참사, 경찰공무원범죄, 경찰이 송치한 범죄, 이들의 관련 범죄를 모두 수사할 수 있다.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는 대부분의 사건은 수사만 할 수 있는 경찰과 그 지위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수처 검사는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인 20일도 다 쓸 수 없다.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검사에게도 시간을 줘야 한다.

 공수처에 거는 기대 수준은 높다. 예민한 인권 감수성으로 인권친화적 수사를 해야 한다. 수사 환경도 달라졌다. 대형로펌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고위공직자만 상대하면서 종전과 달리 알권리를 핑계로 피의사실 공표도 할 수 없고, 언론도 활용할 수 없다.

당분간 사법권력자의 공직범죄 척결에만 집중해 성능을 극대화하자. 그럼 국민이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공수처의 등장 그 자체에 의미가 크다. 그래서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1996년 11월 참여연대가 공수처 출범을 제안한 후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제정하기까지 햇수로 25년이나 걸렸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2007241601201&pt=nv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