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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열린마당] 서울시청사 설계안, 관료 입맛대로 바꿔서야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6.10.11
  • 조회수 6007

[중앙일보] '어째서 한국에는 세계적인 건축물이 없는가'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건축가들은 곤혹스럽다. 언제까지 한국의 대표 건축물로 '남대문'이나 '첨성대'같은 조상의 작품을 내세워야 하는가. '세계적인 규모의 건축'이 즐비한데도 '세계적인 건축'을 생산할 수 없는 이유는 '전통'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관료의 무모한 개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서울시 새 청사 설계안은 태극 무늬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두 단계 공모 과정을 거쳐 당선된 설계안이 "주변과의 부조화"라는 문화재청의 다소 막연한 심의지적을 받고 바뀐 것이다. 최초 당선작은 항아리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항아리를 태극 무늬로 바꾸면 주변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놀랍기만 하다.


전통 소품을 건축물의 모티브로 삼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갓과 부채 모양의 서초동 예술의전당과 도자기 모양의 잠실 종합운동장이 그런 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있는 첨단 건축이었음에도 굳이 '소반'을 빌려 설명해야 했다. 굳이 옛 소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고 믿는 관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서울시 청사의 경우에는 선정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 당선안을 바꾸려면 일정한 검증 절차가 필요했다. 전문가 그룹이 심사하고 선정한 설계안을 비전문가인 관료들이 막판에 바꿔버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로는 앞으로도 세계적인 건축물을 가지리란 희망이 없다.


현대의 건축물이 반드시 전통 소품을 모방해야 한다거나, 최고 결정권자의 '취향'에 따라 당선작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행태다. 건축은 건축가에게 맡기자. 그것이 민주시대의 성숙한 모습이다.

이경훈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