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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모스크바 역사의 증인 메트로폴 호텔 이야기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러시아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게티이미지뱅크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지루한 여름날을 보내기 위해 요즘 모스크바의 신사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천한 도서라 해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미국 소설이다. 소설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체포된 백작 로스토프가 메트로폴 호텔에 연금되면서 겪게 되는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러시아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격변기에 속하는 1920년대, 1930년대의 이야기를 구체제의 귀족을 주인공으로 해서 미국 작가가 풀어내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메트로폴 호텔은 당시의 모스크바 최고의 호텔로 묘사된다. 그런데 메트로폴 호텔은 소설적 허구의 산물이 아니다. 실제 모스크바 중심부에 있는 호텔이고, 지금도 5성급 호텔로 영업 중이다. 오늘은 메트로폴 호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메트로폴 호텔은 붉은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 맞은편에 있다. 거리의 한 블록을 완전히 차지하는 이 호텔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커서일 뿐 아니라 건물의 외관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아르 누보식 철제 난간, 모자이크 장식, 녹색 타일 장식, 중앙의 유리 돔에 이르기까지 그 외관이 화려하기 이를 데가 없다. 내가 처음 이 호텔을 본 것이 1991년 여름이었으니, 당시의 우울하기 짝이 없던 소련식 건물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던 이 호텔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인고로 감히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나 시내를 오갈 때면 이 건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게티이미지뱅크
메트로폴 호텔이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는 것은 러시아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면서 후일에 알게 되었다. 이 호텔은 러시아, 특히 모스크바의 역사·문화와 아주 깊은 관련을 가진다. 호텔 건설 프로젝트는 1898년 사바 마몬토프에 의해 시작되었다. 마몬토프는 철도와 철강 주조로 큰 부를 이룬 재벌이었으니, 미국의 철도왕 밴더빌트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마몬토프는 예술 애호가로도 유명한데, 스타니슬라브스키와 단첸코의 모스크바예술극장을 후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사설 오페라단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모스크바 근교 영지 아브람체보에는 당대의 유명한 문인과 화가들이 모여들어 자유롭게 예술·창작 활동에 매진했으니, 바스네초프, 브루벨, 세로프, 레핀 등이 대표적인 화가들이었다. 세로프의 그림 소녀와 복숭아는 바로 아브람체보를 배경으로 한다.
마몬토프는 원래 이 호텔 자리에 오페라 홀을 둘러싼 문화센터를 짓고자 하였으나, 그의 계획과는 달리 후일 호텔이 만들어졌다. 호텔의 건설은 일종의 협업에 의한 문화 프로젝트와 같이 진행되었다. 건축을 담당한 월코트와 케쿠세프는 당대의 모스크바 최고의 예술가들을 초빙해서 작업을 하게 했다. 브루벨이 '꿈속의 공주' 모자이크 패널을, 골로빈이 세라믹 패널을, 조각가 안드레예프가 석고 프리즈를 담당했다. 그러니 이 호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인 것이다.
1907년 개장한 이래 이 호텔은 제정 러시아 말기까지 모스크바 귀족들과 부호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 특히 호텔 중앙의 보야르스키 식당은 아르 누보 스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된 유리 돔 아래에서 최상급 러시아식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과 더불어 이 호텔은 더 이상 귀족들의 문화의 중심지가 아니게 되었다. 1918년 볼셰비키 정부가 호텔을 국유화해서 소비에트 최고 지도부의 숙소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레닌, 스탈린, 부하린, 트로츠키 등 러시아 혁명사에 이름을 남긴 볼셰비키 주요 인사들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모두 이웃사촌이었던 것이다. 1930년대에 다시 호텔 업무를 시작한 이후, 이곳은 최고위급 해외 인사들이 모스크바 방문 시 숙박하는 곳이 되었다. 쿠바의 카스트로, 중국의 모택동부터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숙박한 유명인들의 사진이 2층 복도에 즐비하다.
이처럼 러시아 역사의 산 증인격인 메트로폴 호텔은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는 러시아 문화의 힘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혹시 모스크바에 가게 되면, 이 호텔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73110270004333?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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