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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바르게 아는 저작권 사건과 판례 (조영남 그림 판매 사건) / 이동기(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8.10
  • 조회수 949

 

 01. 사실관계 
 피고인 조영남은 2009년경부터 2016. 3. 경까지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인 송○○에게 1점당 10만 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송○○이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거나, 기존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달라고 하는 등의 작업을 지시하고, 송○○으로부터 약 200점 이상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았다. 피고인은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의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하였음에도, 이러한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송○○ 등이 그린 그림을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피해자들에게 그림을 판매하였고 이에 검사는 피고인에 대하여 사기죄로 공소를 제기하였다.

02. 법원의 판단
가. 하급심 판결

1) 1심 법원은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반면, 2) 항소심에서는 이를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보조자의 사용사실을 고지함으로써 이 사건 미술작품이 피고인이 ‘직접’ 그린 친작(親作)이라고 알고 있을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한 피해자들에게 보조자들을 사용한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시하였다. 그 이유를 ①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보조자들을 사용한 사실을 알았다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해당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하지 아니하고, ② 이 사건에서, 일부 구매자의 주관적인 의도에 근거해 바로 작가의 고지의무를 인정할 수는 없으며, ③ 또한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피고인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나아가 ④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에 관하여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피고인에 의하여 기망당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하였다. 

 나. 3)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여, 원심 판결의 무죄를 확정하였다. 원심판결 중 저작자에 관한 법리오해의 주장에 대하여는 애초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되지 아니한 부분이어서 검찰의 상고이유는 불고불리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항소심 판결에서와 같이 피고인에게 미술품이 친작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하여 제작하였는지에 관한 사실을 고지하여야 할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司法自制)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03. 해설
쟁점 1.
 본건 대작화가는 기술적인 보조자인가 아니면, 창작적 표현형식에 독립적으로 기여한 작가인가?
 
 본건 공소사실을 보면, 검찰은 이 사건 미술작품을 대작(代作)이라고 판단하여 기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본건 소송이 진행되면서 1심에서는 이 사건 미술작품의 작가는 대작화가라고 판단한 반면, 4) 항소심에 이르러서는 대작화가를 작가라고 볼 수 없고 기술적인 보조자로 판단하면서,조영남을 작가로 판단하였다. 이처럼 항소심에서 이르러 법원의 사실판단에 있어, ‘대작(代作)’의 문제라기 보다는 ‘미술제작에 있어 보조자’의 사용 여부’에 대한 고지의무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그에 따라 보조자 사용 사실의 고지의무를 전제로 하여, 고지하지 아니한 행위를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로 볼 것인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공소사실에는 작위에 의한 기망과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 뒤섞여 표현되어 있고, 일반적인 회화 작업 과정에서 보조자 사용 여부 고지에 대한 문제가 이 사건 쟁점이 되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그와 같은 공소사실의 취지는 여러차례 언론 인터뷰와 방송 출연 과정에서 그림 구매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판매하는 그림을 직접 그린 것처럼 믿게 하는 행동을 해왔다면, 5)「이러한 선행(先行)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진 대중이나 구매자들에게 신의칙에 비추어 착오를 걷어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에 관하여 법률적 판단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본 사건의 쟁점은 6)「현대미술에 있어 보조자 사용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가 있는지의 문제 」로 비약하는 대신, 선행행위자로서의 지위에서 파생되는 작위의무(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점에 대하여 현행 우리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용인 가능한 한계를 벗어났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어야 했고, 그러한 행위가 형법상 사기죄의 기망으로 볼 정도의 행위, 즉 ‘행위 정형의 동가치성’을 인정할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쟁점 2.
 저작권법 위반죄 성립 여부
 
 상고이유에서 검사는 미술작품의 저작권이 대작화가에게 있으므로 조영남을 저작권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불고불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 검찰 기소 당시, 저작자를 대작화가로 하여, 조영남에 대하여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에 대하여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 위반의 점(비친고죄)을 기소하였거나 ‘성명표시권을 침해하여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병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 같은 법 제136조 제2항 제1호 위반의 점(친고죄)을 기소하였다면 어떻게 판단되었을까하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사기죄의 기망 여부, 즉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부작위에 의한 기망 성립이 문제되어 고지의무 여부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쟁점 대신에,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쟁점을 중심으로 변론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본다. 사실인정이 각 심급의 결론과 같다고 보는 경우, 1심에서는 저작권법 위반죄의 유죄가, 항소심에서는 저작권법 위반죄의 무죄가 선고되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항소심과 같은 결론이 될 수 있었을 것인가. 저작자 여부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 사법 자제 원칙을 설시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쟁점 3.
 사법자제의 원칙

대법원 판결은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설시하고 있다. 항소심 판결에서도 ‘사법자제’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창작활동의 자유 혹은 작가의 자율성 보장 등의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7) 예술계에서 논의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하면서 그와 같은 취지를 적고 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8) 개인적 법익의 침해를 이유로 하는 사기 성립의 여부, 기망의 판단, 거래 관계에서의 관행에 대한 판단이 주된 내용이다.  예술에 대한 국가 또는 공공기관의 지원 타당성 여부나, 어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이 공연음란인지 여부를 다루는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의 영역에서, 사법 자제의 원칙은 필요하다. 사법자제의 원칙의 언급은 예술계, 특히 미술 커뮤니티에 대한 사법부의 존중을 엿볼 수 있는 전향적인 내용으로 본다. 또 한편으로는 현안과 쟁점이 생겨나면 고소, 고발로 이어지는 예술계의 문제해결 의식과 능력의 부재를 질타하는 속뜻도 충분히 읽혀진다. 그러나 본건과 같이, 거래에 관한 신뢰를 믿고 작품을 구입한 구매자에 대한 기망 여부를 판단해야 할 사안에서, 사법자제 원칙을 설시하는 내용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사법 자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때에는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대법원 판결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이 사건의 저작자가 누구인지를 판단받기 원했던 미술계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사법 자제 판결에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중에게는 “현대에 살면서, 미술을 한다는 이유로” 현대미술 사조의 이론으로, 대중의 신뢰와 기망의 구성요건을 덮어버린 사안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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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0. 18. 선고 2016고단5112 판결. 해당 사건은 피고인도 2명이고, 대작화가도 2명이지만, 여기 판례 분석   에서는 피고인과 대작화가 각 1인으로 설정함.

 2)서울중앙지법 2018. 8. 17. 선고 2017노3965 판결

 3)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4) 대작작가들(또는 보조자들)을의 저작자성 또는 그 지위에 관하여, 1심 판결에서는 “조영남에게 고용되어 그의 지휘·감독하에 조영남의 창작활동을 수족처럼 돕는 데 그치는 ‘조수’에 불과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독립적으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창작적 표현형식에 기여한 ‘작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시하지만, 항소심 판결에서는 이를 “보수를 받고, 조영남의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품제작에 도움을 준 기술적인 보조자일 뿐, 그들 각자의 고유한 예술적 관념이나 화풍 또는 기법을 이 사건 미술작품에 구현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작가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설시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된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나, 항소심 판결과 결론을 같이한다.

 5) 공소사실에는 ‘조영남이 언론의 인터뷰 등에서 다른 작가는 최첨단 미술을 하면서 아이디어만 내고 조수들에게 제작을 맡긴다. 자신은 조수가 한명도 없어’, ‘최소한 조영남은 조수를 두지 않고 직접 그린다’, ‘ 아침에 일어나면 방송가기 전까지 6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다.’, ‘내가 짬 내서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인터뷰는 집으로 오라고 한다.’, ‘조영남 그림은 쉬워보여도 굉장히 고뇌하며 밤새워 그린 작품입니다.’라고 하는 등의 조영남에 관한 언론 및 방송 출연에 있어, 선행(先行)행위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6)이러한 쟁점으로 치닫게 된 이유는 공소장의 공소사실 중 “예술작품은 작가의 머리에서 구상이 되고, 작가의 손에 의해서 표현이 되어서 작가의 서명으로 아우라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고, ...(이하 생략)”라고, 롤랑 바르트가 언급한 “저자의 죽음”으로까지 표현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고전적 미학이론에 입각하여 적시됨으로써, 사기죄로 기소된 사건이 미학논쟁, 현대미술과 개념미학을 변론하는 장으로 변화되었고, 급기야 예술의 가치 판단에 대한 사법자제까지 언급된 것으로 판단한다.

 7)항소심 판결문에서 “이 사건 미술작품에서와 같이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 미술작품이 미술분야의 특정한 장르(회화)에 해당함을 전제로 위와 같은 제작방식이 적합한지의 여부나 그러한 제작방식이 미술계의 관행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혹은 일반인지 이를 용인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은 법률적 판단의 범주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설시한다.

 8)사실상 사회적 신뢰에 대해서도 심각한 타격을 가한 점도 인정되기는 하지만, 형법전에 적힌 편제에 따라 개인적 법익 침해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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