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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e 스포츠, 신체 없는 전쟁 스포츠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0.08.19
  • 조회수 759

롤파크에 있는 e스포츠 전용 경기장

모든 스포츠는 놀이이자, ‘법 없는 세계의 암묵적인 규칙’ 하에서 경쟁과 계산, 행운과 노력 등이 결합하여 전개되는, 생산성 없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과 효율을 기조로 하는 일상에서의 탈출, 즉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정확성, 순수성, 공평성, 명료성’의 미덕을 요구하기에 매력적이다. 이런 미덕으로 놀이는 현실 세계가 좀처럼 제공해 주지 않는 ‘이상적인 경쟁을 위한 가장 적합한 장’이기도 하다. 이런 본질을 바탕으로 근대기 이후 올림픽을 정점으로 하는 스포츠가 대세를 이루면서 놀이의 문화사를 형성했다면, 정보혁명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된 스포츠는 e스포츠로 전환되어갈 확률이 높다.

손가락과 마인드의 e스포츠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 게임을 ‘e스포츠’라 부르면서 태동한 이 특별한 스포츠는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그 양상이 바뀌어, 2020년 현재 세계 시청자 수가 약 4억 4,300만 명으로 올림픽 시청자를 상회하고 있다. 전설적인 미국의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가 1997년 출시한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를 탄생시킨 시초로 꼽힌다. 당시에는 물론 게임이라 불리었고 그 유해성을 놓고 시끌벅적하였지만, 그 영역이 10대를 중심으로 중독처럼 확장되면서 현재 한국 선수들이 e스포츠 세계에서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20여 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시범 종목으로 인정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하계 올림픽 도입에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당시 IOC 총재는 몸을 쓰지 않으면 스포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당장 들어온 반론으로, 똑같이 손가락 까딱하는 사격은 왜 올림픽 공식 종목이며, 바둑, 체스, 장기도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되는데 왜 게임만? 하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폭력성 등등의 문제도 제기되면서 올림픽 종목 채택은 일단 휴전상태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e스포츠의 확장은 거의 파죽지세이다.

주술과 패션과 변신 욕구의 결합
이 중 스타크래프트 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라이엇게임즈사가 제작한 LoL(League of Legends)을 잠깐 살펴보자. 흔히 ‘롤’이라고 불리는 이 경기의 결승전은 롤드컵이라 불리며 거대한 아레나를 빽빽이 메운 관중 앞에서 전개된다. 게이머가 챔피언이라 불리는 149개의 캐릭터 중 하나를 선정하여 경기하는 방식이다. 라이엇게임즈사는 2014년 두 번째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을 위해 소환사의 컵(Summoner’s Cup)이라고 명명한 높이 1m, 무게 32kg의 컵을 만들었는데 이는 초등학교 4학년생 정도의 키와 무게이다. 소환사는 경기에서 챔피언들을 소환하고 소생시킬 능력을 지닌 일종의 마력을 지닌 전능자 캐릭터이기도 하고, 게이머 자신이기도 하다. 대부분 두건을 쓰고 파워의 상징인 구슬이나 지팡이 등을 들고 있다.

결승전 개막식에서 공개된 이 컵의 제작 과정을 잠시 보자. 영상에서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로 멋진 영어의 내레이션과 불과 철과 그것을 지배하는 손이 등장한다. 내레이션은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끝없이 담금질하며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당신”, “챔피언이여, 당신에게 존경심을 담아 이것을 바칩니다” 등으로 영웅에게 바치는 공예적 트로피의 제작상을 보여준다. 이 자막에 등장하는 손은 하나의 제품을 혼신의 정성과 노력, 시간과 스킬을 바쳐 만드는 장인의 손으로, 정교하고도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손인 것이다. 또 하나 게임의 홍보를 위한 시네마틱무비를 살펴보자. 2019년 유럽에서 열린 롤드컵의 시네마틱무비에서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날아올라라 불사조여 발목을 잡는 건 너를 의심하는 너 자신뿐, 피로 얼룩진 왕관을 차지한 시간. 바로 지금이 네가 나설 시간, 날아올라라” 등의 가사가 펼쳐진다. 이런 노랫말이 흐르는 동안 어두운 전철에서 홀로 서 있는 소년, 혹은 어두운 방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소년들의 몸에는 금속 물질의 피부가 씌워지며, 눈에서
광선이, 손에서 강한 무기가 뻗어 나오는 게임 속 아바타가 되어 플레이를 펼친다. 현실의 ‘여리여리한’ 청소년들은 저렇게 게임 속의 챔피언들을 통해 불사조가 되어 ‘킬’ 수가 많은 강력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잉여와 미학의 몸 vs. 완벽한 능력자의 몸
게임 속 챔피언들이 입는 옷은 스킨이라고 불리는데 2019년 루이비통의 여성 디자이너인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가 5명의 가상 아이돌 그룹인 ‘트루 대미지(TRUE DAMAGE)’ 멤버의 스킨을 디자인했다. 이 중 키아나의 스킨을 보자. 더 이상 섬세할 수 없는 흰색과
금색을 배합한 레이스 상의에 금박으로 띠를 두른 흰 레깅스를 입고 리본과 커다란 링 귀걸이, 검은 장갑을 끼고 자신의 무기에 도도하게 앉아 있다. 시청자들은 이 게임에 참가한 경력이 있어야만 그 스킨을 구매해 소장할 수 있다. 롤드컵의 케이스를 제작한 루이비통은 가상 세계의 가상 인물들에게 다시 패션을 입히는 위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루이비통을 위시한 명품 산업의 사양 현상과 대조적이다. 이런 스킨들은 또한 오프라인의 아이돌들이
모방하여 공연장에 구현되기도 한다.

e스포츠는 이렇게 스포츠와 전쟁, 패션, 음악, 영웅 서사를 결합한 종합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꿈꾸던 신화 속의 인물들을 소환한 청소년들은 그들의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신으로 격상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 소년들이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을 현실에서 흉내 내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종합 장르물로서의 e스포츠는 인간의 신체를 가꾸고, 단련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체사용을 보이고 있다. 구기 종목에서 뇌와 몸과 손이 일체가 되어 보여주는 동작 속에서 신체는 살아 움직이며 생동한다. 하지만 e스포츠에서의 신체는 눈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도 없으며, 손은 단지 뇌로 가기 위한 터미널 역할을 할 뿐이다. e스포츠의 전장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신체가 그리도 건장하고 완벽하게 되어가는 동안, 그것을 조정하는 인간의 신체는 점점 잉여의 몸이 되어 헬스장의 트레이닝을 통해 미학적인 몸의 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니콜라스 제스키에르가 ‘리그 오브 레전드’의       2018 롤드컵에서 중국의 e스포츠팀 IG가 소환사의 컵을     2019 롤드컵 로고
버추얼 스타 키아나를 위해 디자인한 스킨            들어올리고 있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
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
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2018년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