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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FTA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이호선 (법학)교수

  • 작성자 박정석
  • 작성일 06.06.08
  • 조회수 7816

이호선 <국민대 교수·법학>

영국의 한 수입업자가 공기를 주입해 사용하는 사람 실물 크기의 섹스 인형을 수입하려다가 관계당국으로부터 수입불허처분을 받자 자국 정부를 상대로 유럽재판소(ECJ)에 제소했다.

재판소는 각국의 도덕기준은 회원국의 정서와 문화,가치에 따라 주권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자국 내에 동일한 상품의 생산 및 판매를 규제하는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는 새삼스럽게 수입품에 그러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독일의 한 주류수입업자가 프랑스로부터 곡주를 수입하려다가 국내 시판용 주류의 알코올 함량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독일정부의 제지에 걸렸다.

수입업자는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다.

이에 대해 유럽재판소는 어떤 상품이 유럽공동시장의 한 회원국에서 적법하게 생산돼 유통되고 있다면 이 사실 자체로 수입 회원국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제품 기준도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역시 수입업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엔 독일 정부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산품이나 수입품을 가리지 않고 비차별적으로 적용해 오던 규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화의 자유이동에 관해 장애를 초래하는 한 적용될 수 없다고 판정 받은 충격적인 사례였다.

지금 우리와 미국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샅바 싸움이 시작됐다.

그러나 FTA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단 자유무역지대가 출범하면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 다음부터는 사법적 분쟁해결기구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자유무역'이라고는 하지만 구체적 사안마다 '자유'의 정의에 대한 다툼이 있고 국가정책적인 면에서 결정돼야 하는 사안들이 '자유무역'이라는 규범과 상충할 때는 결국 제3의 기관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유럽 단일시장의 법률적 논리를 적극적으로 제공한 유럽재판소는 1952년 12월에 만들어졌다.

그해 7월25일 유럽연합의 시초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하면서 아예 그 기구 중의 하나로 재판소가 설치되기로 했던 것이다.

1960년 5월에 발효된 유럽자유무역 (EFTA) 역시 1994년 1월 별도의 재판소를 제네바에 두도록 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FTA의 경우 분쟁해결의 기능을 어디에 맡기느냐에 관해서는 별반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

이번 미국과의 FTA 협상단의 구성에서 법무부나 대법원의 인력이 빠져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다자간 협상이 아닌 일 대 일의 FTA 체제하에서는 분쟁해결의 기능이 기존의 국제기구나 비 상설 중재기구에 맡겨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자유무역의 보편화는 결국 언젠가는 유럽연합처럼 이 분야만을 독자적으로 다루는 국제 상설재판소 설치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당장 이용될 분쟁해결 기구의 구성,설치장소,심리방식,강제이행 방법 등에 관해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하고,장기적으로는 우리와 미국을 아우르는 모든 FTA 회원국들이 동등하게 구성하는 제3의 중립적 재판소를 설치하자는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FTA 협상의 국외자처럼 보이는 사법부는 기존의 자유무역 내지 단일시장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분쟁사례들을 수집해 정당한 몫을 지키는 법률적 논리를 개발하고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

게임에서 이기길 원하는가.

자기가 게임의 규칙을 만들면 된다.

전쟁시에는 총이 무기이지만 평화시대에는 법과 규범이 무기라 할 수 있다.

FTA 협상 자체가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무기는 놔둔 채 경제논리로만 풀어가려고 시도하는 한 우리의 운명은 그리 낙관적일 수 없다.

FTA는 총력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