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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때 이른 대선 여론조사 보도 / 언론정보학부 교수

  • 작성자 박정석
  • 작성일 06.06.14
  • 조회수 6800

지방선거가 끝났다. 더 큰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대통령 선거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다. 바빠지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 이후 대선 보도에 속도감이 느껴진다.
양적으로도 많이 늘었다. 그 중심에 대선 여론조사 보도가 있다. 6월 들어 열흘 남짓한 사이에 중앙일보는 4건, 동아일보는 3건, 한국일보는 2건, 그리고 조선일보, 한겨레, 문화일보는 1건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전문 검색 사이트 카인즈를 검색해보니 5년 전인 2001년 6월 한 달 동안 신문과 방송의 대선 여론조사는 1건이었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크기 때문일까? 이런 추세라면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대선 여론조사 보도가 상시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선 1년 3개월 전 아이오와주의 모의 경선(straw poll)이 출발점이다. 큰 의미는 없다. 과학적 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여론조사는 대선 1년 전 시작되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보도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간헐적이다. 본격적인 여론조사 보도는 투표 8개월 전 각 당 후보 윤곽이 드러나면서 시작된다.

대선 여론조사 보도 여부와 시점은 일차적으로 언론이 판단할 사항이다. 그러나 사회적 의미는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의 대선 여론조사 결과는 단순한 호감도이지, 지지도가 아니다. “다음 인물 중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뒤 10명 안팎의 후보 이름을 제시한다.

응답자는 그 중 한 명만 골라야 한다. 호감이 있더라도 가장 높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름이 거명되지 못하는 인물은 조사에서 배제된다. 응답자의 느낌은 숫자로 집계돼 지지도로 포장된다. 숫자(number)는 마력을 가진다.

다음 대통령 선거일은 2007년 12월 19일이다. 1년 6개월 남았다. 대다수의 유권자는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 예비 후보의 면면을 잘 알지 못한다. 정책과 능력, 철학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없다.

언론에 비춰진 이미지를 토대로 판단한다. 지금의 여론은 단편적인 정보를 기초로 취합한 결과다. 지금의 호감도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지지율이 낮은 인물도 정당의 후보로 결정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 전 이맘때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1~2%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는 점을 참고하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정 시점을 대선 180일 전에서 더 늦출 것을 제안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당내 경선전이 조기에 점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 보도는 주마가편(走馬加鞭)격으로 경선전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각 당 후보 결정 과정은 앞으로 1년 이상 현재진행형이 될 것이다. 차기 대선전이 벌써부터 현재진행형으로 제시된다면 우리 사회가 짊어질 정치적 비용은 어떻게 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대권 후보에 대한 검증 기간이 길수록 유권자들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 합리적 선택을 할 것이라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믿음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의 경험은 선거전이 조기 과열될수록 유권자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할 근거를 제공하기보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보도는 정보 제공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개별 언론사의 영향력 확대와 자사 홍보라는 또 다른 동기도 숨어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렇기 때문에 한 곳에서 시작하면 다른 곳도 경쟁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차기 대선에 대한 전망이나 예비 후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논의의 초점과 대상이 달라져야 한다. 누가 앞서고 누가 뒤진다는 ‘경마 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비전과 현안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풀 것인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권 후보가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여론이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