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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홍성걸 칼럼] 이건희 회장과 초일류 대한민국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 작성자 이민아
  • 작성일 20.11.04
  • 조회수 185

1988년 가을 어느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필자는 첫달 조교 월급을 받아 들고 아내와 함께 벼르던 TV를 사러 갔다. 진열대에는 온통 소니, 히타치, NEC,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의 멋진 TV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침 리딩엣지라는 브랜드의 대우컴퓨터와 삼성의 프린터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아 잘 팔리던 시절이어서 한국산 TV를 찾으려 했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한국산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한쪽 구석으로 안내했다. 매니저가 안내한 곳에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삼성 TV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가격이 일본 제품에 비해 무척 싸다는 것 외에 어떤 매력도 없는 제품이었다. 매니저는 삼성 제품을 보여주면서도 일본 제품의 우수성을 비교적 관점에서 설명했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지만 결국 품질 좋은 소니 트리니트론 제품을 구입했다.

 

그저 평범한 TV 하나를 산 이 경험으로 나는 전자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반도체 산업정책을 선택했다. 첨단산업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장차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한국과 대만이 전혀 다른 경로를 밟으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1992년 나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산업 발전 과정과 국가 역할을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의 반도체산업 진출과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건희라는 '거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1974년 재미교포 강기동 박사에 의해 국내 최초로 메모리반도체 제조업에 진출했던 '한국반도체'가 불과 1년여 만에 투자부족으로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젊은 이건희는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만약 이건희라는 기업인이 없었다면 LG보다 후발업체였던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제조업에 먼저 진출하고 이를 통해 후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이었을 것이다. 이후 1982년 12월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 전체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산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선언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반도체는 실패 위험이 매우 높아 정부조차 동의하지 않았기에 나온 것이었다.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를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본격적 민주화 시대를 맞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7년 간 제조업 근로자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삼성은 그 선두에 있었다. 생산성 향상은 지지부진한데 임금은 두 배 이상 올랐으니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더 이상 저임금 노동에 의한 가격경쟁력으로 비교우위를 갖지 못하게 되자 이건희 회장은 누구보다도 먼저 질적 성장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마누라와 애들 외에 모두 바꾸라'던 신경영 선언이 그것이다. 이후 휴대전화의 불량률이 높자 임직원 앞에서 애니콜 제품을 불태워 품질경영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를 통해 이 회장은 취임 시 약속했던 바와 같이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저 취임 일성으로 해보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통해 신화를 창조했던 이건희 회장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 그의 공과를 평가하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체로 그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무노조 경영과 세습경영을 이유로 부정적 평가를 제시하기도 한다.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아버지로부터 삼성이라는 기업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정치경제적 환경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업인을 평가하면서 예수님이나 부처님, 공자님처럼 성인의 기준을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해야 한다. 이제 남겨진 사람들은 더 많은 초일류기업을 만들어 가면서 동시에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정치를 초일류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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