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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강윤희(러시아, 유라시아학과) 교수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인근 마네지 광장. AP 연합뉴스
문득 달력을 보니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예년의 경우 연말연시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지인들과의 회식 모임이 많은 시기였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좀처럼 연말연시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오늘은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네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갔지만,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안 지나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러시아 정교회가 제정 러시아 시기의 달력인 율리우스력을 따라 축일을 정한다. 표트르 대제 때 도입된 율리우스력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에 비해 13일 뒤늦다. 따라서 1917년 2월 혁명도 현재의 달력으로 말하자면 3월 8일에 발생했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10월 혁명도 11월 7일에 발발했다. 소련 정부는 그레고리력을 따랐기 때문에 혁명기념일은 11월 7일에 기념되곤 했다.
러시아인들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산타클로스를 믿을까? 러시아 겨울 도시 풍경을 보면, 각 도시의 중앙 광장이나 큰 쇼핑센터에 알록달록한 전등으로 장식된 거대한 트리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것은 러시아 고유의 풍습은 아니었다. 러시아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도입된 유래는 독일 풍습을 따라 성탄절에 각 가정마다 전나무를 세우도록 명령한 표트르 대제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풍습이 러시아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여제 시기였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은 성탄절에 트리를 장식했는데 이러한 풍습이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 퍼져나간 것이다. 18세기 러시아 귀족들이 유럽 문화를 적극 수용, 향유하는 코스모폴리탄적 특성을 띠었던 점을 고려하면, 크리스마스 트리는 귀족들 사이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유럽 문화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어로 욜카라고 부르는 전나무를 세우는 풍습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퍼져나간 것은 19세기 말엽이었다.
소련 시절에는 어땠을까? 소련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서 적극적으로 무신론을 옹호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탄압하고 대부분의 교회를 폐쇄했다. 따라서 성탄절을 축하하는 욜카를 세우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욜카의 풍습이 워낙 강하다 보니 욜카의 종교적 의미는 배제한 채 신년 축하용으로 욜카를 세우는 것이 허용되었다. 탈공산주의 시기인 현대 러시아에서도 욜카는 성탄절용이라기보다는 신년 축하용의 성격이 강하다.
러시아 산타클로스 제드마로스. 연합뉴스
러시아는 예로부터 그들 버전의 자체적인 산타클로스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추위 할아버지, 즉 제드마로스가 바로 그것이다. 파란 망토를 두르고 하얀 턱수염을 기른 제드마로스는 건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얼음으로 변하게 만드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 제드마로스는 눈처녀란 의미의 스네구로치카와 함께 세 마리의 흰색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닌다. 스네구로치카는 아름다운 소녀이나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사랑에 빠지면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제드마로스나 스네구로치카는 모두 겨울을 상징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으며, 이 두 캐릭터의 조합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를 연상시킨다. 한편 제드마로스나 스네구로치카는 예수 탄생과는 관련이 없다. 종교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역시 성탄절용이 아니라 겨울 및 신년 축하용이다.
사실 러시아는 성탄절보다는 신년을 더욱 크게 기념한다. 러시아인들은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스뱌트키라 불리는 새해맞이 세시축일을 즐기는데, 그 정점은 당연 1월 1일 신년이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러시아인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송구영신을 축하한다. 자정에 신년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서로 "스 노브임 고돔!(새해를 축하합니다)"라 외치며 샴페인을 마시고 그 잔을 떨어뜨려 깨뜨린다. 어린이들이 선물을 기대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것도 성탄절이 아니라 신년 즉 1월 1일이다.
러시아가 성탄절이 아니라 신년을 크게 기념하는 것은 소련 시절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행이다. 이처럼 현대 러시아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소련의 유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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