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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칼럼] 2021년, 법치 회복의 원년이 되길 기도한다 / 이호선(법학부) 교수
"2021년은 정상으로 회복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톰 행크스가 주연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는 1950년대 냉전 시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험전문 변호사인 제임스 도노반이 어쩌다가 미국 내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에 대한 국선 변론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가 너무나 인상 깊어 이 영화를 떠올리면 우선 그 대목이 떠오른다.
도노반이 변호사로서의 직업 윤리에 충실하게 아벨을 변호하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CIA 요원 호프만은 결국 붙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도노반은 정서상 섞일 수 없는 아일랜드계인 자신과 독일계인 호프만을 모두 미국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가 물은 뒤, 그것은 헌법이라고 한다. 다양한 인종, 언어, 종교, 출신 지역, 역사적 반목의 경험 등을 용광로 속에 넣어 하나로 만들어 내는 그 중심에 헌법이 있다는 것, 제대로 된 헌법적 정신이 작동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이 소련 공산전체주의를 제압하는데 그 무엇보다 강력한 전략 무기임을 도노반의 입을 빌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스토리 전개로만 보면 굳이 넣지 않아도 되었을 이 장면에 어쩌면 영화의 상당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도노반의 대사는 공동체와 정치, 법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울 것도 없다. 예컨대, 로마 공화정 말기를 살았던 키케로는 그의 <국가론>에서 그 보다 한 세기 전에 한니발을 물리쳐서 로마를 구했던 스키피오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그가 했다는 ‘국가에 대한 정의’를 기록한 바 있는데, 여기에도 국가란 제대로 된 법과 그 법에 대한 약속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키케로가 인용한 스키피오에 따르면 ‘국가는 백성의 것이지만, 여기에서의 백성은 법에 대한 합의와 효용에 대한 동의로 인해 결합한 사람들’이지, 아무렇게나 우연히 모인 무리가 아니다. 국가는 왕이건, 소수의 귀족에 의해서건, 시민 전체에 의해서건 선한 의지와 의롭게 통치될 때만 국가라 불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폭군이나 파당이 지배하고, 폭민화된 민중이 통치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그 국가에 문제가 있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폭군이나 파당이 장악한 국가는 더 이상 ‘백성의 것’이 아니고, 백성이 불의하여 폭민이 되었다면 그들은 ‘법에 대한 합의와 효용에 대한 동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폭군, 파당, 폭민이 장악한 공간은 국가가 아니다.
꼬박 2020년 한 해를 대한민국의 법무 행정 체계 농단에 다 걸기를 하고, 어디까지가 사감(私感)이고, 어디까지가 그나마 자기 진영 보호 논리에 충실했는지 그 동기조차 불분명한 행태를 통해 미친 존재감을 보여 주었던 추미애 법무(法無) 장관이 무대 뒤로 퇴장한 것은 파당과 폭민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에는 아직은 시민적 상식과 법관의 양심을 지닌 하급심 판사들의 용기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 법원을 통해서 나오는 일련의 판결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법리와 결론임에도 주목을 받고, 그 정도의 판정을 내린 것에 대하여 큰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위기, 공화정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 준다. 곳곳에 파당과 폭민이 오뉴월 쉬파리 끓듯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자기 파당의 편에 선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 게시판에 떼로 몰려가 탄핵 청원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린치를 가하는 ‘대깨문’이라는 폭민이 있는가 하면,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피고인에 대한 판결이 있자 사법을 개혁해야 한다며 날뛰는 국회의원 뱃지를 단 저급한 무리들이 있다. 심지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겠다며 여당 의원 열댓 명이 급조한 공소청 법안이라는 것도 올라왔는데, 김용민이란 사람이 발의한 이 법안에는 김남국이란 변호사도 있고, 황운하라는 전직 경찰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들이 수사의 핵심 수단인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에 필요한 영장은 우리 헌법 제12조 제3항이 아예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서만 하도록 못 박고 있어, 검찰에서 수사권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초보적 사실도 모르고 있다는 것에 아연할 뿐이다.
설마 수사권은 물론 수사지휘권도 없는 검찰이 경찰과 법원 중간에서 영장 신청 심부름이나 하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이들의 정신 건강을 의심해 봐야 한다. 거악(巨惡)의 효율적 척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이들은 공화정의 적이자, 헌법의 반역자들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런 파렴치하고 파괴적인 파당과 폭민에 양보하면 안 된다. 2020년이 공화정 대한민국에 최악의 해였다고 기록되도록 해야 한다. 2021년은 그 최악의 바닥을 치고 정상으로 회복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헌법의 정신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불의한 법에는 저항하고, 완장을 찬 부역자들에 대하여는 면전에서 비판하고 기록하여야 한다.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거룩한 분노의 시간을 갖자. 폭민이 왜곡시키는 인터넷 뉴스의 편향성을 지적하고, 선한 댓글도 달자.
성경에는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 구절이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2021년 연말에는 바른 헌법적 정기가 회복되어 이런 꿈을 꾸며, 입에 웃음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