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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신화'에서 꼭 짚어봐야 할 것들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쿠팡의 뉴욕거래소 상장준비가 화제입니다. 쿠팡맨들에게까지 주식을 나누어 준다는 미담도 부러움을 삽니다. 정관계에서도 빠지지 않고 말을 보탭니다. 경제부총리는 쿠팡의 상장이 우리나라 유니콘기업의 쾌거이며 벤처투자활성화의 중요성을 되새겨 준다고 했고, 다른 한편 야당인사들은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반기업정서 탓이라며 목소리를 키웁니다.
쿠팡의 성장과정은 인상적인 사건입니다. 엄청난 규모의 손실을 감당하고서라도 소비자를 자신의 서비스에 꽉 묶어 두는 이른바 록인(Lock-in)을 굳건히 추진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을 잘 보여 줍니다. 저 역시 쿠팡에 사로잡힌 소비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쿠팡을 둘러싼 논의와 찬사들 사이에서 '미국기업' 혹은 '미국에 상장된 기업'에 대한 선망과 우대의 징후를 감지합니다. 우리 정관계인사들은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와 같은 기업을 이야기할 때 이른바 '선진기업'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못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현대차를 이야기할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쿠팡이 미국시장 상장을 선택하면서 그 선진기업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쿠팡이 현재 가진 현금의 대부분은 판매업체들에 정산을 길게 미루기 때문에 생긴 돈입니다. 네이버쇼핑에 입점한 업체들이 대체로 하루, 길면 일주일 이내에 판매대금을 정산받는 반면, 쿠팡 입점업체들은 적어도 15일, 길면 90일이 되어야 정산대금을 받습니다. 물론 이런 계약조건은 판매업체들과 합의된 것입니다. 쿠팡 입점업체들은 느린 정산 대신 규모의 경제라는 큰 이점을 누립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 유통기업들의 정산방식을 '갑질'로 명명하면서 수수료인하와 정산기간단축을 강력히 압박해 왔습니다. 이들보다 몇 배나 정산이 느리고 수수료도 높은 쿠팡이 미국주식시장에 상장한다고 해서, 갑자기 유니콘기업의 쾌거가 되는 것은 좀 어리둥절합니다. 외국에서 조금만 알려지면 갑자기 K를 붙이고 찬사를 보내는 습관이 또 작동한 걸까요?
외국 '선진'기업들에는 친절하고 우리 기업들에는 엄정한 정부의 태도는 최근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법은 적용범위를 매출 100억원의 기업까지 포함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스타트업들을 규제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외국의 빅테크기업들은 규율하지 못하면서 국내의 모든 스타트업들의 발목에는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역설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최근 논의되던 이익공유제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세계에서 정치인과 공무원이 실리콘 밸리를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형 실리콘 밸리' 타령은 적어도 수십 번 이상 불린 노래 제목이 되었습니다. 마침 코로나로 해외여행도 어려우니 이제 높으신 분들이 실리콘밸리 대신 테헤란로와 판교와 공덕을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의전과 보도자료로 점철된 공식방문은 사절입니다) 이곳에는 구글과 애플과 페이스북에 결코 뒤지지 않는 혁신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선진기업이 아니라고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각종 법으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될, 혁신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희망이 바로 거기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과 애환이 정책에 진짜로 반영되는 순간을 꼭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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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