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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이호선 칼럼] 대법원장 김명수에 대한 국민탄핵민사배상청구가 갖는 의미 / 이호선(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1.03.08
  • 조회수 265

"에밀 졸라의 말을 빌자면 김명수는 사회악의 실체일 뿐...쥐잡기가 시작되었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조선의 일은 사흘을 넘지 못 한다.” 민족성에 대한 괜한 자학이 아니다. 1434년 9월 2일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세종의 말이다. 거의 6백여년 전 임금의 입에서 이런 탄식이 나왔을 정도니 장구한 계획과 진득함과 담을 쌓고 있는 이 땅의 풍토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뉴스가 뉴스를 덮고, 사건이 사건을 덮는 이면에는 워낙 충격적인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탓도 있지만, 지난 일을 쉬 잊고, 덮어버리는 우리네 속성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에 대한 경계심과 응징이다. 관권 선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미끼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로 무용지물이 되고 정국이 출렁댈 조짐을 보이는 상황 속에 흡족한 웃음을 흘릴 자가 있다면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짧은 기억력과 얕은 민심의 수혜자는 단연 김명수이다. 그러나 그를 결코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대학교수들이 바로 그들이다. 전국의 대학 교수들 114명이 1, 2차에 걸쳐 대법원장 김명수를 상대로 1인당 120만원씩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에 대법원 수장이란 자가 노골적으로 나서서 거들고, 보통 사람도 낯뜨거워할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일삼고, 자리 지키기에 여념없는 모습을 보일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탄핵을 논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야당이 쪼그라든 현실을 감안하여 법적인 탄핵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헌법 정신과 가치에 비추어 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속된 말로 딱 떨어지는 ‘탄핵 각’이다. 그런 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민사배상청구는 국민이 직접 그 책임을 묻는 국민 탄핵의 성격을 갖고 있다.

 

진실을 밝히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사회적 승복을 끌어낼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사법은 국가 권력의 전횡을 막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이자, 자유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이다. 손발 없는 권력인 사법부의 힘은 바르고 공정한 판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만 나온다. 사법은 한 국가의 정신이요, 혼이다. 입법이 망가지고, 관료들이 부패하여도, 사법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최소한 그런 노력을 하는 법관들이 있다면 그 사회와 국가는 그나마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무기력 속에 소수의 기생충이 대중을 흡혈하는 사회 속에는 예외없이 부패하고 무능한 자들이 사법을 농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명수라는 자가 사법부의 수장으로 헌법기관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온갖 반 법치주의, 위헌적 국정 운영이 가져다는 헌정질서에 대한 해악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학 교수들 114명은 123년 전 저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 때 에밀 졸라가 사회의 광기, 권력의 농단에 맞서 외쳤던 것처럼 “정의의 통상적 통로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지만, 침묵함으로서 “비열한 음모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김명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하자면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은 드레퓌스가 아니다. 그는 유대인 장교라는 이유로 인종적 편견과 질시 속에서 성급하고 악의적인 졸속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었으나, 주변 사람들은 드레퓌스 역시 그 성격상 만일 자신이 그 재수없는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더라면 국수주의, 조직 이기주의, 대중의 광기에 휩쓸렸을 가능성이 높은 소시민적 군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진실을 밝히기까지 12년이 걸렸고, 프랑스를 지금의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대깨문과 비(非) 대깨문 진영 이상으로 갈라 놓았던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힌 주인공들은 광기와 허위가 주류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진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소수의 정치가, 군인, 지식인이었다.

 

그 자신이 평소 유대인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드레퓌스가 누명을 쓰고 있고,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상부에 진실 공개를 촉구하다가 한직으로 쫓겨 났다가 투옥까지 되는 정보국장 피카르 중령, 성공한 사업가로서 상원부의장에 있으면서 드레퓌스가 진범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이유로 반드레퓌스파로부터 온갖 모함을 당하고 결국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던 쉐레르케스트네르,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자신의 모든 명성과 지위가 위태롭게 됨을 알면서도 진실의 펜으로 적들의 심장을 후벼 팠던 에밀 졸라 등이 이 사건의 주인공이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가장 최근에 개봉한 ‘장교와 스파이(2019)’라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 이 사건을 되짚어보는 사람들은 이야기 전개가 우리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사실에 탄식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에밀 졸라보다 더 큰 분노와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래도 그 당시 에밀 졸라에게는 거짓으로 거짓을 덮는 자들을 고발하고, 탄원할 수 있는 대통령들이 있었고, 비록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군사법정은 비겁함과 굴종의 모습을 보였으나, 프랑스의 일반 사법기관은 여전히 정의의 심판자로서 위상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정적 가치와 덕성과는 거리가 먼 위선과 무능,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을 기망하는 대통령, 거기에 한 술 더 떠 사법적 정의를 통해 국가 권력 행사의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할 자가 대법원장이랍시고 정권의 눈치를 보고, 거짓말을 내뱉으며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는 우리 현실은 “나는 고발한다!”고 했던 수 백, 수 천명의 에밀 졸라를 필요로 하고 있다.

 

침묵은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삼권분립의 기둥을 갉아먹는 쥐를 보고서도 모른 체 하여 결국 무너지는데 까지 이른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사실상 공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실과 정의를 갈망해야만 찾을 수 있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만, 진실과 정의를 찾아줄 것이라 기대하는 그 곳, 사법부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불신은 더욱 가공스러운 일이다.

 

김명수에 대한 중단없는 책임 추궁에 나선 우리 교수들은 김명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며, 인간적으로 어떤 악의나 증오를 품고 있지 않다. 에밀 졸라의 말을 빌자면 김명수는 사회악의 실체일 뿐이다. 김명수에 대한 소송은 삼권분립 와해와 자유민주의 종말의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이 소송이 기폭제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무도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결기를 합법적 저항권으로 보여주는 참다운 시민행동이 잇따르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되었다. 김명수를 상대로 국민 각자가 다만 얼마라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함으로써 그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우리 시대에 용납할 수 없는 사법농단이 있었음을 각인시켜야 한다.

 

2021년 2월 16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1968년 발생한 북한의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이 낸 소송에서 북한에 대한 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 53년 전의 사건에 대한 민사배상판결이었다. 정의에는 시효가 없다. 우리의 소송은 김명수에 대한 것이지만, 그 정신은 이 시대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불구화시키고, 입법독재로 헌법 정신을 농단하고, 국정을 파탄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자, 중단없는 책임 추궁의 시작이기도 하다.

 

2021년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국민들이 피고 김명수를 상대로 저마다 원고가 되어 법정을 가득 메우고, 대법원장이라 불리는 자에 대하여 에밀 졸라와 같이 준엄한 역사적 논고를 펼치는 엄숙하며 장쾌한 광경을 상상해 본다. 이제 쥐잡기가 시작되었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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