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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싸울 용기, 적어도 토론할 용기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 작성자 박윤진
  • 작성일 21.07.21
  • 조회수 508


©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계가 좀 어수선합니다. 이달 초부터 최대 52시간 근무제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시간이 비교적 잘 통제되는 대기업들과 달리 스타트업의 경우 개인별 노동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고 통제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덜 마련되어 있습니다. 창업자들이 잠재적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된 셈입니다. 매우 빠른 성장을 통해 산업을 혁신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본질인데, 이번 제도가 그런 가속 성장 기회를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촉망받는 AI 스타트업 창업자 한 분이 이달 초, 노동시간 제한이 강한 성취 열망을 가진 스타트업 구성원들의 자아실현을 제한하는 면이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그런데 그 글에 대한 반응이 정말 격렬했습니다.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가의 탐욕이라는 비판적 댓글이 여럿 달린 것입니다.

 

사실 노동시간 감축은 노동운동이 피로 쟁취한 것입니다. 5월 1일 노동절 자체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던 시위대의 희생을 기리는 날입니다.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 실현되는데 거의 150년이 걸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주당 노동시간 8시간을 줄이는데 50년이나 걸렸습니다. 이런 역사를 떠올리면, 노동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대신 자율적으로 하자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창업자가 곧 글을 내릴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공격적인 댓글을 단 이들과 차분하게 토론했습니다. 결국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은 스타트업들에 대한 각국의 노동시간 규제 사례와, 노동법의 해석 문제를 차분하게 다루는 건전한 토론으로 진화되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타트업의 노동시간 문제가 간단히 선악 혹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어서 노동자-자본가의 이중성을 가집니다. 또 지식노동자들의 경우 노동과 휴식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미국이 연봉과 업무특성에 따라 상당한 예외를 인정하고, 영국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노동규제의 예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은 이런 복잡성과 특수성을 반영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부딪힌 수많은 난제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제조업 중심 완전고용 시대에 만든 연공서열급, 연금제도, 노동법제들의 쓸모가 다해갑니다. 교육, 부동산, 군 복무, 그리고 저출산과 기후변화처럼 크고 시급한 문제들도 더 미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져야 마땅한 대통령 선거판이 어쩐지 사생활에 관한 다툼으로 쪼그라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여론조사 상위권 후보들의 말은 명징하고 예리한 의견 대신 모호하고 둥근 추상어로 채워져, 진실로 무엇을 말하는지 당최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어렵고 복잡한 문제와 맞닥뜨려 싸울 용기,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꺼내 들고 토론할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꼭 필요합니다.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문제 해결을 계속 미루면, 다음 세대에게 남는 것은 희망 없는 미래일 것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