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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알키비아데스가 반면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 / 박규철(교양대학) 교수

  • 작성자 이민아
  • 작성일 21.11.09
  • 조회수 721

키마이라(Chimaera)라는 괴물을 아는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이다.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그리고 꼬리는 뱀 혹은 용의 모양을 한 이종결합체다. 세 개의 머리가 있었고, 가운데 머리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죽였으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영웅 벨레로펜(Bellerophon)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던 괴물이다. 아테네 정치판에서도 키마이라와 같은 괴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데마고고스(demagogos: 선동정치가)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BC450-404)였다. 

사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우상(idol)이었다. 대중 선동에 도가 튼 정치가였다. 하지만 조국 아테네를 팔아먹은 배신자이기도 하였다. 이국땅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가 한 일이라곤 아테네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그리스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테네 최악의 리더(leader)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테네인들은 왜 그런 최악의 리더를 그토록 사랑했을까? 
 
알키비아데스는 금수저였다. 페리클레스의 양자였으며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다. 잘 생긴데다 웅변 실력 또한 탁월하였다. 대중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였다. 이미 30세에 아테네 최고의 정치가 그룹인 10인의 스트라테고스(strategos: 장군)에 선발될 정도로 능력자였다. 세상에서 자기보다 잘난 사람은 없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아테네 정치계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그를 케네디와 패튼 장군을 합쳐놓은 듯한 인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리더십은 참담하였다. 소크라테스처럼 도덕적이지도 않았고, 페리클레스처럼 민주적이지도 않았다. 패튼처럼 용감하지도 않았고, 케네디처럼 헌신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테네를 멸망의 길로 이끌 만큼 무도(無道)하였으며, 사지(死地)에 빠진 병사들을 돌보지 않고 망명할 정도로 무능(無能)했고, 자신의 망명을 받아 주었던 스파르타 왕의 부인과 간통할 정도로 무치(無恥)하였다. 악덕을 지닌 ‘사악한 리더’의 전형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탐욕(pleonexia)과 교만(hybris) 그리고 포퓰리즘(populism)이란 악덕(kakia)에 매료되었다. 악덕에 대한 집착이 그를 ‘사악한 리더’로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절제(sophrosyne)와는 거리가 먼 리더였다. 도덕적이지도 않았고 청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적 욕망의 노예였다. 시칠리아 원정(Sicilian Expedition, 415-413년) 실패 후, 패전의 책임과 신성모독(asebeia)의 죄를 모면하기 위해, 적국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아기스 2세가 그를 환대해주었으나, 배은망덕하게도 왕비 티마이아(Timaia)와 바람을 피웠다. 분노한 아기스 2세가 그를 죽이려하자, 이번에는 페르시아로 망명했다. 그 뒤, 아테네로 돌아가 잠시 권력을 잡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적들에게 쫓겨나 다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404년 암살당함으로써,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탐욕에 집착했던 리더의 최후였다.    

알키비아데스는 교만한 리더이기도 했다. 그의 오만한 리더십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은 시칠리아 원정이었다. 주전론자로서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 원정을 주장했고 그것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원정 도중 그는 적국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그의 망명으로 인하여, 아테네에는 대재앙이 찾아왔다. 페리클레스가 닦아놓았던 아테네의 민주정체가 붕괴되었고, 테미스토클레스가 강화시켰던 아테네 해군도 전멸했다. 아리스테이데스와 키몬 그리고 페리클레스가 묶어놓았던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도 해체되었다. 아테네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조국을 풍비박산(風飛雹散)냈다. 오만한 선동정치가 한 사람 때문에 조국 아테네가 패망한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포퓰리스트(populist)적 리더이기도 했다. ‘가장 선한 자들에 의한 통치(aristocracy)’에는 무관심하였다. 페리클레스가 완성해놓았던 민주정치 시대(461-429년)를 마감한 채, 우중정치(ochlocracy) 시대(429-404년)를 열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환심을 사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원전 416년 개최된 올림픽 마차경주에서 일곱 개의 마차 팀을 출전시켜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쓸기도 하였다. 대중 선동가이기에 시민들이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재승박덕(才勝薄德)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재주는 차고 넘치지만 인간 됨됨이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사악한 리더가 된다. 사악한 리더는 ‘악덕정치(Kakistocracy)’를 펼친다. 데마고고스 알키비아데스는 사악한 리더에 대한 방증(傍證)이다.   

 

미국 빙엄튼 뉴욕주립대의 세스 스페인은 ‘사악한 리더’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내놓았다. 사악한 리더는 타자의 고통을 즐기며 비열하고 가학적인 특성을 지닌 리더다. 그에게는 ‘어둠의 세 가지 요소(dark triad)’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마키아벨리즘’과 ‘나르시시즘’ 그리고 ‘사이코패스성(性)’이다. 이때, 마키아벨리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이고, 나르시시즘은 타자를 배제한 채 자기 논리에만 집착하는 악덕이며, 사이코패스성은 타자의 상황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는 악덕이다. 그런데 세스 스페인이 말하는 어둠의 세 가지 요소는 알키비아데스가 보여주었던 최악의 리더십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점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위해 윤석열과 이재명 그리고 안철수와 심상정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내년 3월이면 대한민국을 책임 질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탄생할 것이다. 사실, 민주국가의 주권자들은 최선의 리더를 원하고, 누구나 최선의 리더를 선택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들의 자부심은 이내 후회로 변질되곤 하였다. 주권자들이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동정치가의 감언이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 말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정치가 토크빌(1805~1859)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일갈했다. 최선의 리더를 뽑느냐 최악의 리더를 뽑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권자의 정치적 수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옥석(玉石)을 가리듯이, 심사숙고해서 다음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알키비아데스를 뽑았던 아테네 시민들처럼 후회하지 않으려면.  

 


박규철 국민대·서양철학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이자 동(同)대학교 후마니타스 리더십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플라톤 정치철학과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고대 회의주의와 인문학 리더십 등이다. 아신대 교수, 월간 『에머지』 및 『넥스트』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고대 회의주의』(근간), 『고전의 창으로 본 리더스피릿』(공저), 『그리스 로마 철학의 물음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철학과 신학』(공역),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적 대화』(공역), 『신플라톤주의』(공역)가 있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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