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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웅’ 우즈·호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 車사고 불운 ‘닮은꼴’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지난해 2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대수술을 받은 후 재활에 돌입했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10개월간의 수술, 치료, 재활과정을 거쳐 지난달 필드로 돌아왔다. 우즈는 지난달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 칼턴 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PNC챔피언십에서 아들 찰리와 함께 호흡을 맞춰 준우승을 차지했다. 성적도 좋거니와, 우즈 특유의 스윙이 살아났기에 그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복귀 기대감은 무척 높아졌다. 우즈는 사고 당시 정강이뼈와 종아리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등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하마터면 다리를 절단할 뻔했다고 밝혔다. 우즈는 여전히 수술한 다리가 불편해 PNC챔피언십에서 카트를 탔고, 절뚝거렸다. 몸 상태가 완벽하게 회복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팬들은 돌아온 골프황제에게 찬사를 보냈다.
우즈는 PGA투어에서 통산 82승을 거둬 샘 스니드와 함께 역대 최다승 공동 1위를 이루고 있다. 메이저대회에서는 통산 15승으로 잭 니클라우스가 보유한 이 부문 최다승에 3승이 모자라다. 우즈는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니클라우스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우즈와 겹치는 왕년의 스타는 1997년 세상을 떠난 벤 호건이다. 통산 64승(역대 4위)을 거둔 호건은 프로골프사에서 5명밖에 없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우즈 역시 5명에 포함된다. 호건은 국내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지만 미국인들에겐 ‘명인열전’ 마스터스를 창설한 바비 존스와 더불어 골프의 영웅이자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다. 1953년 호건이 처음 출전한 브리티시오픈(디오픈)에서 우승하고 귀국하자 뉴욕시는 15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통적인 경축행사 색종이 카퍼레이드까지 펼쳤다. 뉴욕시의 색종이 카퍼레이드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같은 극소수의 국가적 영웅에게만 허락하는 이벤트다. 이런 대우를 받은 사람은 존스와 호건뿐이다.
호건은 캐디 출신의 골퍼. 가난, 그리고 왜소한 약점을 피나는 훈련을 통해 극복하고, 골프 사상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는 스윙을 완성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와 동시대 맞수로 활약했던 스니드는 “골프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세 가지는 번개, 호건, 그리고 내리막 퍼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호건은 특히 우즈와 마찬가지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치명적인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뒤 한 해 3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총 6차례 메이저대회 정상에 올라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호건이 재기 과정에서 보여준 불굴의 용기와 투혼은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할리우드 최초의 골프 영화로까지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호건은 사고 이후 부상 후유증으로 장거리 여행이 어려워지자 주로 집 근처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와 메이저대회에만 제한적으로 출전했다.
우즈와 호건은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과 자동차 사고라는 공통점을 지녔고, 또 인연이 있다. 우즈를 청소년 시절부터 10년 넘게 가르친 스윙코치 부치 하먼의 아버지는 호건과 절친한 친구였다. 하먼은 자주 집을 드나들었던 호건에게 골프를 배우고 함께 플레이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우즈를 세계적인 스타로 기른 그의 부친(얼 우즈)은 핸디 2의 골프광으로 호건의 열렬한 팬이었다. 우즈의 부친은 호건이 쓴 골프교습서를 표지가 닳도록 반복해 읽으면서 골프를 익혔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 아들에게도 호건의 책을 여러 차례 읽고, 호건의 스윙을 본받으라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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