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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난 평균속도 이상, 남들은 늑장’ 생각… 저속운전자 탓하는 심리와 비슷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작성자 고은나라
  • 작성일 22.03.16
  • 조회수 573

 

지난 1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소니오픈 도중 재미교포 케빈 나가 다른 골퍼와 벌인 SNS 설전으로 골프계의 오랜 병폐인 늑장 플레이가 다시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첫날 케빈 나가 9언더파를 몰아치며 61타로 1위에 오르자 한 골프채널 리포터가 SNS에 공이 홀에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공을 주우러 가는 익살스러운 케빈 나 특유의 퍼팅 동작을 두고 “매번 봐도 지겹지 않다”며 칭찬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여기에 케빈 나가 퍼팅하는 데 시간을 너무 끈다며 일부 골프팬들이 댓글을 달자 다시 이를 반박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논쟁이 불붙었다. 동료 골퍼인 미국의 그레이슨 머리도 “마치는 데 3분이나 걸리는 케빈 나의 퍼팅이 지겹다”면서 가세했다.

 


이튿날 가뜩이나 전날보다 무려 10타나 많은 71타를 치며 공동 16위까지 순위가 떨어지는 바람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케빈 나는 머리를 향해 “나는 너의 컷 탈락이 지겹다”며 반격했다. 머리가 최근 출전한 22개 대회에서 14번이나 컷 탈락한 점을 비꼰 것이다. 2017년 바바솔챔피언십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머리는 성적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와 알코올 의존증을 이유로 지난해 7월부터 투어를 중단한 상태다. 화가 난 것은 이해되지만, 케빈 나 자신도 데뷔 이후 우승 없이 무려 8년을 고통 속에 보낸 경험이 있는 만큼 동료의 어려운 처지를 방어의 도구로 삼은 행동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케빈 나는 투어에서 플레이 속도가 느린 선수로 악명이 높았다. 2017년 미국의 한 골프전문 매체가 전체 투어 선수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케빈 나는 벤 크레인, 제이슨 데이, 조던 스피스와 함께 플레이가 가장 느린 선수로 뽑혔다.

 

늑장 플레이의 문제는 골프의 흥미와 재미를 반감시킬 뿐 아니라 골프를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간 단축은 팬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프로 스포츠계의 사활이 걸린 현안이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공수교대시간 단축, 연장전 승부치기 도입 등 경기 시간을 3시간 내로 줄이기 위해 ‘전쟁’ 중이다. 골프도 무려 6시간까지 늘어난 라운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대적으로 규칙을 개정했다. 공 찾는 시간을 5분에서 3분으로 줄이고, 깃대를 뽑지 않고 퍼팅을 할 수 있게 했으며, 무릎 높이로 드롭 높이를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PGA투어 역시 컷 통과 기준을 기존 78명에서 65명으로 낮추고, 늑장 플레이에 대해 관리와 처벌도 대폭 강화했다. 비록 비공개지만 45초 이상 늑장 플레이로 적발된 골퍼의 명단을 특별 관리해 이들이 경기 중 한 샷에 1분 이상 시간을 끌면 곧바로 경고나 벌타를 부여한다. 시즌 말 부여되는 벌금도 5만 달러로 이전보다 10배나 높였다.

 

늑장 플레이는 여러모로 나쁜 운전습관과 비슷하다. 미국의 코미디언 조지 칼린은 운전할 때 사람들은 자신보다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을 멍청이로, 자신보다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미친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인간의 심리 특성을 꼬집은 것이다.

 

골프도 비슷한데, 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골퍼는 자신의 플레이 속도가 평균 혹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골퍼들은 평균보다 느리게 플레이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늑장 골퍼들이 자신의 플레이가 늦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잘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초보 때 귀찮다고 안전띠를 잘 매지 않던 운전자는 이후 안전띠를 계속해서 매지 않는다. 늑장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경기속도에 관한 에티켓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거나 무시하던 골퍼일수록 고질적인 늑장 골퍼가 될 가능성이 크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