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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근정전과 백악관 그리고 청와대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이경훈(국민대 교수·건축학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이 뜨겁다. 실로 오랜만에 건축 공간이 논의의 중심에 놓이게 된 듯하여 괜스레 뿌듯하기도 하고 우려와 바람이 동시에 인다.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은 공간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1943년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된 의사당 재건 논의가 한창이던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직역하면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다시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이다. 영국인이 의사당을 만들었고 그 건축물이 다시 의회와 역사를 규정했다고 부연했다. 결국 영국 의사당은 부채꼴이 아닌 원래의 모습대로 두 정당이 마주 보는 형태로 재건됐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다음으로는 건축에서 소통은 다양한 층위에서 작용한다. 청와대가 불통의 공간으로 비난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태생적 한계가 있는 외형과 내부 공간의 형식 탓이 크다. 전통 건축의 외형을 부풀려 만들고 그 안에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과 실질적 업무공간을 함께 넣다 보니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거대한 단순 조형물이 됐다. 외부 형식은 전통 건축인데 내부에서 현대식 업무 그것도 대통령이 참모들과 가깝게 지내는 실용적 공간을 지향하는 부조화에서 혼란이 시작된다. 지금 청와대 건물은 업무공간이라기보다는 의례 공간이며, 미국 백악관보다는 경복궁 근정전에 가깝다. 따라서 논쟁이 집무실 위치 문제로 집중하는 양상은 불통의 공간을 반복할 위험을 안고 있다. 현재 청와대나 광화문, 용산 심지어는 세종시에 만들더라도 대통령 집무실이 소통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나치게 너른 집무실이다. 대통령 집무실 면적은 50평가량이라고 한다. 출입문에서 책상까지 거리가 15m여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는 전언이 있을 정도다. 회의실 크기도 마찬가지다. 참석자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고 배석자들이 도열하는 회의는 강당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다. 마이크를 사용해야 할 정도이니 비대면 회의와 다를 바 없을 정도다. 식탁에 앉듯 어깨를 맞대는 정도의 공간에서 소통은 더 원활하다. 공간의 크기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권위는 이미 충분하다.
둘째로는 창 없는 방, 즉 암실에 대한 태도다. 한옥의 규모를 키우다 보니 공간이 깊어졌고, 모든 방이 크고 창에 면하게 구획하다 보니 300평쯤 돼 보이는 청와대 한 층은 대여섯 개의 방으로 채우고 있다. 반면에 백악관의 평면 구조는 각 방의 크기가 단출할뿐더러 창이 없는 방들도 많다. 루스벨트 회의실이나 비서실장 사무실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조명과 환기는 기계설비로 충분하다. 모든 방이 남향 창을 가져야 한다는 고착된 관념은 한국 현대건축 특히 주거 문제와 같은 고민이기도 하다.
셋째로 청와대가 단순한 건물이 아닌 일종의 아이콘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청와대는 건물로 로고를 만든 유일한 정부 기관이다. 자체가 오랜 시간 강력한 상징이라는 의미이다. 경제적 이유, 안보 공백 우려, 주민 불편 같은 것들이 반대 논리로 거론되지만 건축적 측면에서는 시각적 기호로서 건물 외관의 문제도 크게 보인다. 용산으로 이전한다면 국방부 청사로 지어진 건물이 대통령 집무실로 정서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은 간단치 않을 수 있다. 공원이나 외부공간으로 보완할 수도 있겠으나 외관이 주는 강력한 기호적 기능은 다시 살펴야 할 점이다. 이 또한 중요한 소통의 요소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쟁은 실제의 공간으로 근정전과 상상의 공간 백악관이 충돌하는 의식의 지평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상상과 실제의 간격을 메꾸는 동인이 욕망이라고 했다. 민주적이며 탈권위적인 공간에 대한 욕망이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을 추동하는 건강한 에너지가 되기를 바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무엇보다 건축적 상상력과 섬세한 실천이 필요한 일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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