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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한일관계 가로막는 아베 그림자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 작성자 박채원
  • 작성일 23.01.31
  • 조회수 282

아베 전 총리 추모로 뜨거운 일본열도
기시다 총리도 아베 유산 답습 가능성
아베 피살로 역풍 맞은 한일 관계개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쓰야(通夜·밤샘)가 치러지는 일본 도쿄 조죠지 사찰에서 11일 한 여성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열도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아베 추모 분위기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가족장으로 급히 치러진 장례식은 TV로 중계되었고 장례식장에는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아베의 공식 장례를 9월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전후 일본에서 국장이 치러진 사례는 자민당 보수정치의 원조 격인 요시다 시게루가 유일하다.


아베의 정치이념은 메이지 유신 주역이자 정한론 원조인 요시다 쇼인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한다. 아베 정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신념과 정책을 답습하는 면이 강하다. 아베 정치에 보수우익, 극우라는 명칭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베는 한일관계에서 역사 수정주의자로 악명이 높다. 아베는 "침략에는 정해진 정의가 없다"는 말로 과거 침략 행위들을 부정했다. 이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등 역사 뒤집기를 반복했다. 그는 애국하는 국민을 키울 목적으로 교육기본법을 제정했고 과거사에 사죄, 반성보다는 일본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사교육을 강조했다.


아베 정권 기간 중 자민당은 세 번의 중의원 선거와 세 번의 참의원 선거에서 연전연승했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 총재로 아베는 공천권 행사를 통해 당내 지도력을 강화했다. 그는 야당과의 관계에서는 대화와 설득보다는 강압적인 밀어붙이기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다. 아베는 집권 중 모리토모, 가케 학원 스캔들, '사쿠라를 보는 모임' 등 정치부패 의혹으로 야당과 미디어의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버텼다. '특정비밀보호법', '카지노법', '집단자위권을 인정한 안보법제 개정' 과정에서는 야당과 여론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로 강행 처리했다.


아베 정치 필생의 과업은 평화헌법의 개정이었으나 총리 재임 중에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제 도입으로 사실상 헌법해석을 변경했다. 전후 체제의 제약을 탈피하고 군비 증강을 통해 일본도 국제정치에서 안보 역할을 담당할 것을 추구했다. 아베 정치의 출발점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초강경 자세였다. 한국의 역사청산 요구에 대해서는 역사 수정주의로 맞서는 한편,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아베 담화 발표로 총괄적 정리를 시도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용단을 내려 '위안부 합의'로 해결을 꾀했으나 불완전 연소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아베의 정치외교적 유산은 헌법개정과 군비 증강을 통한 강한 안보 그리고 현실주의에 기반한 전략외교로 요약할 수 있다. 정치인 아베는 사라졌지만 아베 정치의 유산은 추도 분위기 속에서 당분간 더욱 강한 형태로 분출될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의 유업을 계승해 헌법개정 추진과 납치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결의했다. 국내총생산(GDP) 2%로의 군비 증강과 '적기지 선제공격 능력' 보유를 안전보장 정책의 기둥으로 삼을 기세다.


아베의 죽음으로 당분간 한일관계 개선 과정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져 징용,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경 입장으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거는 기대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박진 장관의 방일과 4년 7개월 만의 외교장관 회담 개최에도 불구하고 '팔짱을 낀 채 현금화 이전 징용문제 해결'만을 반복하는 일본 측의 자세는 변하지 않고 있다. 참의원 선거 후 관계개선을 꾀하려던 한국의 기대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아베의 죽음이라는 역풍을 맞아 일본은 당분간 비타협적 자세를 풀지 않을 태세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