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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국민의힘 경선 규칙과 정당 민주주의 / 장승진(정치외교학과) 교수

  • 작성자 박채원
  • 작성일 23.02.07
  • 조회수 313

 

 

학자로 살아가면서 당혹스러운 순간이 간혹 있다. 그중 하나는 평소에 주장하던 바가 현실에서 애초의 취지와 무관하게 악용되는 경우이다. 겉으로는 내 생각과 부합하는 것이니 당연히 찬성해야겠지만, 음험한 속내가 투명하게 읽히니 덮어놓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어차피 한갓 학자가 뭐라 생각하든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나 혼자서만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국민의힘에서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경선 규칙을 당원투표 70%와 일반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 30%를 합산하던 것에서 당원투표를 100% 반영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대외적으로 내세운 취지는 "당원들의 총의를 확인하고 당대표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실상은 특정 후보의 당대표 선출을 막아서 2024년 총선의 공천권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물론 특정 경선 규칙이 가져올 후보 간 유불리에 대해서는 필자가 신경 쓸 일이 아니며, 국민의힘이 어떠한 선택을 하건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가오는 총선을 통해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다만 학자로서 관심 갖는 것은 정당을 대표하는 인사를 선출할 권리를 누가 행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적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정당이 공직후보를 선출할 때 국민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정당이 공천하는 공직후보는 소속 정당의 입장과 노선을 대외적으로 대표한다. 따라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말이 공허한 수사가 아닌 다음에야 당원이 정당의, 즉 자기 자신의, 얼굴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하물며 선거를 통해 일반 유권자의 선택을 다시 받아야 하는 공직후보도 아니고 당대표에 대해서야 말할 것도 없다.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어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는 것이 정당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그러한 다양성은 공동의 가치와 방향에 대한 합의 위에서 보장된다. 물론 당원이 아닌 일반 지지자 또한 가치와 방향에 합의할 수 있겠지만, 권리의 행사를 위해서는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어야 한다.


정당이 소위 민심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심은 정당의 활동과 결과를 평가하고 심판하는 존재이지, 정당이 사사건건 의견을 구하는 컨설턴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면, 얼마나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이 없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물며 여론조사라는 불확실한 방식으로 의견을 구하니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도 없다.


다만 당원 중심의 정당 운영을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당원투표가 조직동원 선거로 전락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당원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장치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당심을 억지로 민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민심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두 개의 정당이 모든 정치적 자원을 독점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당원이 주도하는 정당 운영은 필연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소외된 유권자들이 눈을 돌릴 수 있는 유의미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어야지, 단순히 포장지만 그럴듯하게 바꾸어 새 상품인 양 홍보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