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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이경훈의 도시건축 만보] 1기 신도시 재정비 가능한가?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채원
  • 작성일 23.08.18
  • 조회수 278

 

 

갓 30년 된 도시를 갈아엎는
토건의 발상서 이젠 벗어나
백년 지속할 공간 만들어야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은 모두 1기 신도시의 재정비 공약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용적률을 올려서 다섯 군데 1기 신도시에서 10만 가구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책이 부진해 보이자 주민들이 공약 파기라고 채근했고, 작년 8월 국토교통부 장관은 2년 안에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밤을 새워서 명품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간을 벌기는 했겠으나 뾰족한 묘수는 없어 보인다.


우선, 1기 신도시가 본격적인 의미의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지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도시계획이라는 것이 길을 내고 필지를 나누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정확한 인구추계를 바탕으로 시설과 용량을 계획했다. 베드타운이 되지 않게 상업과 업무를 적절히 배분했고 아파트 배치도 무조건 남향보다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이웃과 접촉하도록 배려했다. 본격적인 계획도시여서 재정비하는 일이 역설적으로 어렵다. 도시 용적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도로나 학교 등을 넓히고 더 짓는 것만 해도 여러 문제가 따른다. 아파트 단지마다 내놓는 땅이 다르고 사업 주체나 시기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1기 신도시 대부분이 단지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단지는 자체로 완결적이며 녹지로 둘러싸여 연결이 불가능한 고립된 구조이다. 이 때문에 수평 연결이 어렵고 이미 층수는 충분히 높으니 부분적인 개선이나 증축은 선택지에 없다.


그대로 살기에 불편하고 재정비 또한 불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1기 신도시가 소위 ‘빛나는 도시’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빛나는 도시는 이름과 달리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1920년대 대표적인 근대주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도시 이론이다. 전통적인 서구의 도시가 불결하고 비위생적이며 특히 자동차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시작했다. 낮은 집의 용적을 모아 마천루를 짓고 그래서 얻게 되는 토지에 녹지와 자동차를 위한 입체 도로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한다. 도시를 기능별로 주거, 업무, 상업, 위락 등으로 구분해서 각 용도지역은 고속도로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도시라는 공간조직이 가지고 있는 유연함과 포용, 지속가능성을 간과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은 사라졌고 도로마다 교통체증이 일어났다. 밤이면 도심이 텅 비게 되었다. 빛나는 도시는 완벽하게 실현된 사례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여러 도시 특히 아시아 등 제3세계 신흥도시에 적용됐다.


빛나는 도시는 고층 아파트, 녹지, 자동차가 핵심이다. 1기 신도시 역시 빛나는 도시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본격적인 반성이 시작되던 1980년대 말에 계획됐지만 그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더구나 자족도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상업, 업무지역에까지 고층 아파트를 짓는 등 애초 계획을 뒤트는 일이 더해져 빛나는 도시 특성이 더욱 강화됐다. 이후의 신도시들은 더욱 빛이 난다. 특히 친환경이라고 수립된 3기 신도시 계획은 도시라기보다는 단지와 녹지 배열에 가깝다. 서구에서 폐기된 빛나는 도시가 유독 한국에서만 빛을 발한다.


밤을 새워 마련한다는 마스터플랜에서는 빛나는 도시의 악영향을 덜어내야 한다. 대중교통을 강화해서 걷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백 년을 지속할 도시공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람 수명보다 짧은 도시는 명품은커녕 도시도 아니다.


잔치는 끝났다. 우리 사회의 공고한 믿음과 암묵적 합의를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아파트 건물의 수명은 기껏해야 30년이고 그때마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 비용은 아파트를 더 많이 지어 팔아서 충당한다는 합의와 결별해야 한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당신이 사는 집은 그대로 아름답고 살 만하며, 앞으로 백 년간은 끄떡없이 서 있을 것이라고….

갓 30년 된 도시를 노후도시로 낙인찍고 도시를 갈아엎는 발상 때문에 항상 공사판이 끊이지 않는다. 토건세력, 부동산 카르텔의 음모일지 모른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