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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정치 판사’들은 여의도로 가라 / 이호선(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채원
  • 작성일 23.08.24
  • 조회수 374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급기야 법관마저도 이념의 잣대로 나눠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달 24일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6년 전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겠다던 그는 현직 판사가 정치적 이유로 탄핵당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당사자가 낸 사표를 반려하고, 국회에 거짓말을 한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김명수 대법원, 정치 편향 가속
‘노무현 사건’ 판결 공정성 논란
양심적 법관 모독하지 말아야

 

 


[일러스트=박용석]

 


그는 ‘법관마저 이념의 잣대로 나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을 개탄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이젠 거꾸로 판사가 법복을 입고 정치 편향성을 판결에 담는 세상이 됐다. 여기엔 김명수 대법원 체제가 들어선 이후 튀는 언행으로 여의도 진출에 성공한 몇몇 법복 입은 ‘정치판사들’이 선례로 작용한 탓도 크다고 본다.


군인·경찰·소방과 달리 판사 집단은 조직 자체가 크지도 않고, 일사불란한 위계질서가 필요하지도 않은 공직이다. 그런데도 국민을 대할 때 별도의 유니폼을 입도록 하는 공직은 판사가 유일하다. 판사의 재판은 항상 법복 안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그런 법복을 입은 법관은 법대에 앉아 법정을 내려다본다. 법대를 높게 만든 것은 법관들의 키가 작아서가 아니다. 죄 중에 법정모욕죄가 있다. 일반 공무원 모욕죄는 없다. 왜 법관만 특별한 옷을 입고 특별히 높은 곳에 앉아 그들보다 지적·도덕적·윤리적으로 모자랄 것 없는 시민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업무 수행에 특별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할까.


그것은 법관 개인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 이솝 우화 중에 ‘신상(神像) 나르는 당나귀’가 있다. 신상을 싣고 가던 당나귀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엎드리자 우쭐거리며 태업하다 마부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멍청이야, 사람들이 널 보고 절하는 것이 아니라 신상을 보고 절하는 거야.” 당나귀는 핀잔과 함께 채찍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관련 사건에서 검사가 벌금 500만원을 구형한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 박병곤 판사가 “판결로 정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실형 선고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전직 대통령은 공인이 아니다”라는 박 판사의 독특하고 억지스러운 해석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졸지에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로 전락했다. 피고인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 됐다.


진실을 밝히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사회적 승복을 끌어낼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사법은 국가 권력의 전횡을 막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다. 동시에 자유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손발 없는 권력인 사법부의 힘은 바르고 공정한 법 적용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사법은 국가의 정신이자 혼이다. 입법이 망가지고, 관료가 부패해도 사법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최소한 그런 노력을 하는 법관들이 있다면 그 사회와 국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법관들이 판결을 통해 실질적으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것은 대중이 형식을 뭉개고 격정에 휘말리며 성급하게 나가고자 할 때 정반대의 완충재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수도승 같은 자세로, 공평무사함을 통해 판사는 사회에 울림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번 박 판사의 행동은 재판권을 파당적으로 남용한 것이란 의심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상식적인 국민의 균형 감각에도 못 미치는 편향성으로 판결을 내린 법관에게 탄핵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번 판결을 묵인하고 넘어가면 ‘법복 입고 정치하는’ 제2, 제3의 판사가 쏟아져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선악에 대한 분별력보다 이해타산에 능하고, 튀는 언행으로 정치권에 환심을 사려 하며, 기회만 되면 여의도로 이직하려는 자들이 법원에 남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동시에 대다수 양심적인 법관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