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언론속의 국민

리더가 모른다고 말할 때… / 이은형(경영학부) 교수

  • 작성자 박채원
  • 작성일 23.12.19
  • 조회수 216

“부장님, 한국 남성의 30% 이상이 70대가 되기 전에 암에 걸린다는 거 알고 계시지요?”


보험설계사가 기업의 중년 관리자에게 질문한다. 이때 “네”라고 답하는 사람과 “아니오, 모르는데요?”라고 답하는 사람 중 누구에게 더 보험을 판매하기 쉬울까. 보험설계사가 듣고 싶은 대답은 ‘네’다. 그러면 바로 보험상품에 대해 설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른다고 답한 부장님’에게는 한국 중년 남성의 암 발병률에 대해 길게 설명해야 하고 이후의 설득 과정도 녹록하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아는 척하면 학습할 기회 놓쳐
대화가 활발해야 실수가 적어
조직원 심리적 안전감도 증대

 

 


거짓말하는 환자들. [일러스트=김지윤]

 


인지심리학을 일상생활과 연결해 쉽게 설명해주는 아주대 김경일 교수의 강의 중 나오는 사례다. ‘아는 척 대답한 부장님’은 암 발병률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놓친 채 보험상품에 가입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모른다 부장님’은 충분한 정보를 얻은 후 가입 여부를 정할 수 있다. 풍부한 정보를 고려해서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을 하게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답하는 태도’다.


상황을 바꾸어보자. 만약 보험상품 가입 여부가 아니라 부서의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는 척하는 태도가 중요한 결정을 망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리더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직급이 높아질수록 리더는 ‘모른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리더는 부하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질문의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물론 익숙하고, 반복적으로 해온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리더라고 해서 해결책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새로운 유형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리더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묻는 것은 조직에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리더 본인의 학습 기회가 된다. 모른다고 말해야 새로운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리더가 모른다고 말할 때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탐색하고 축적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팀원들이 얻는 정보의 양도 더 많아질 수 있다. 리더가 잘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는 순간 리더 본인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학습 기회까지 줄어든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리더가 ‘나는 이미 알고 있다’라는 태도를 보이면 다른 구성원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어렵고, 그 정보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시도를 멈추게 된다. 리더가 나를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질문 없이 아는 척하면서 넘어가게 된다.


둘째, 리더가 ‘모른다’고 말할 때 팀의 심리적 안전감이 형성된다. 구성원들은 리더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드러낼 수 있다고 느낀다.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게 된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면 리더와 동료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심리적 안전감을 가진 구성원은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며 그 팀의 의사 결정 수준도 올라갈 것이다.


셋째, 리더에 대한 신뢰가 더 커진다. 리더가 ‘모른다’고 말할 경우 취약성이 드러나고 리더십에 손상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반대다. 여러 연구에서 구성원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리더를 ‘더 강한 리더’로 인식하고 더 신뢰한다고 밝히고 있다. 리더가 열린 마음으로 의견과 정보를 구한다고 느끼는 구성원들은 그 사안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열심히 탐색하게 된다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다. 오히려 리더가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 아는 척해도 결국은 구성원들이 눈치챌 수밖에 없기 때문에 리더십 효과는 감소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때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어느 때보다 급격하다. 밀레니얼 세대에 이어 Z세대와 알파세대의 등장이 관심을 끌고 있으며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대로 인한 변화 또한 어디까지 갈지 예측 불허의 상황이다. 변화무쌍한 새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리더가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자. 가능한 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폭넓게 의견을 청취하려고 노력하자. 그래야 리더와 구성원, 그리고 조직의 학습과 업데이트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대 교수·대외협력처장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