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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음식이 꼭 맛있을 필요 없고, 패션이 꼭 멋질 필요 없다” / 김재준(국제통상학과) 교수

  • 작성자 박채원
  • 작성일 24.07.16
  • 조회수 167

최근 유럽을 여행한 필자는 현대 문명이 유럽과 유럽 후예들이 만든 세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번 글에서는 유럽에서 경험한 두 가지 문화예술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필자는 예술이란 익숙함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 같은 도시다.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건축물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앞서 언급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들이 아니다. 파리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르페주(Arpe‵ge)가 필자 마음을 잡아끌었다.


파리와 밀라노가 알려준 예술

 

 


프랑스 파리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르페주는 채소 요리가 주를 이룬다. [김재준 제공]

 


아르페주는 알랭 파사르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그는 원래 고기 요리로 명성을 떨쳤지만, 현재 거의 비건 요리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아르페주에서는 해산물과 고기 요리를 주문할 수 있지만, 채소 요리가 주를 이룬다. 파사르의 시도는 초기에 많은 반발을 샀다. “프랑스의 미식 전통을 거스른다”는 비판이 있었고,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는 데도 위협이 됐다. 그러나 파사르는 자신만의 철학을 굳건히 지키며 반발을 극복했다.

올여름 2024 파리올림픽이 열리는 파리는 물가가 매우 비싼 도시다. 일반인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필자처럼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아르페주에서 점심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미쉐린 3스타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페주에서 만난 음식은 오로지 채소와 과일로 구성됐다. 적은 양으로 10가지 넘는 요리가 제공됐는데, 부르고뉴의 퓔리니 몽라셰를 곁들이니 더욱 좋았다. 맛 좋은 요리가 많았지만, 반대로 맛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요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요리가 새로운 미각 체험을 선사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채소를 겹겹이 올린 스시, 참기름을 뿌린 고추장 느낌의 요리, 고기 대신 비트로 만든 카르파초 등이 인상 깊었다. 재료의 신선함과 탁월함이 돋보였으며, 식사 후에도 배가 편안했다. 채소 위주의 요리에서 느낄 수 있는 건강한 포만감 덕분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폰다지오네 프라다. [김재준 제공]

 


‌이탈리아 역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패션과 디자인의 수도’로 불린다. 밀라노에도 파리처럼 유명한 건축물이 즐비한데, 필자는 이 가운데 폰다지오네 프라다(프라다재단)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라다재단은 이름 그대로 프라다에서 설립한 문화재단이다. 밀라노의 공장 터를 리모델링해 장소를 꾸몄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패션쇼나 전시가 열린다. 별다른 행사가 열리지 않더라도 공간 그 자체로 멋있다. 두 가지 다른 스타일이 믹스 앤드 매치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필자는 가성비를 중시해 명품 옷이나 가방을 거의 사지 않는다. 하지만 루이비통 미술관, 까르띠에 뮤지엄 같은 곳은 좋아하고 자주 방문한다. 프라다재단에서는 이탈리아 현대 작가의 전시는 물론, 프라다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개인 컬렉션인 루이즈 부르주아와 로버트 고버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에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표현 기법이 사용됐다. 부르주아와 고버의 작품 역시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이 잘 담겼다. 부르주아의 작품은 여성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으며, 고버의 작품은 일상의 사물을 통해 인간 내면을 다소 과격하게 탐구하는 시도를 보여줬다.


급격한 변화와 창조의 중요성


현대 과잉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은 맛과 멋을 탐닉적으로 추구한다. 가끔 “이것이 정상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음식이 꼭 맛있을 필요가 없고, 패션이 꼭 멋질 필요가 없다. 익숙함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파사르의 요리는 채소와 과일만으로도 충분히 미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프라다 역시 공업 재료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등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파사르와 프라다의 공통점은 바로 급격한 변화와 창조성이다.

앞선 두 체험은 필자로 하여금 예술과 미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향후 여행에서도 이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 역시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익숙함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길 권한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