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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인의 추천 해외 여행지 ‘나의 그 곳!’ -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작성자 정으뜸
  • 작성일 12.01.25
  • 조회수 16464

 방학이라고 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해보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여지는 국민*인이 있다면 이 글에 주목해도 좋겠다. 우리들에게 책『연금술사』,『브리다』, 『순례자』로 더 익숙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이 소설가를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소리에 무작정 프랑스에서부터 스페인까지의 순례길 도보여행을 시작했다는 손안나 학생(중어중문학과 06). 무작정 떠난 그곳에서 그녀가 만난 아름다운 도시들과 함께 사람들과의 즐거운 인연 그리고 그에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음악까지. 지금부터 그녀가 소개하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의 두 다리만 믿고 걷고 또 걸었다는 그녀. 자신도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그 길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과 스페인 북쪽 지방의 아름다운 도시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카톨릭의 성지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말한다. CAMINO란 뜻은 ‘길’이고, SANTIACO는 ‘성 야고보(스페인식 이름으로 산티아고)’이다. 즉 산티아고 성인이 걸었던 길이다.

유럽 전역에서 시작하여 예전에는 사람들이 카톨릭 순례를 위한 종교적인 목적으로 걸었지만, 요즘은 스포츠나 정신적 탐험을 위한 다양한 목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는 여러 곳이 있는데, 대부분 프랑스에서 출발한다. 총 800km로 모든 갈림길마다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이 방향을 표시해 주고 있다고 한다.

 

01_팜플로나의 시청건물. 02_거리에서. 03_옛 성채를 지나며.

와인에 담길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는 시골길과 작은 마을들에 지루해질 쯤 당신을 맞이하는 도시 팜플로나. 스페인 북부에 있는 중세풍의 도시로 사람과 소의 달리기 경주 ‘산 페르민 축제’로도 유명하다. 축제 철이 되면 도심 한복판에서 소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뒤엉켜 약 850m 거리를 질주하는 진기한 풍경이 연출된다. 참가자들은 하얀 옷에 붉은 목도리를 하고 손에는 잡지책을 들고 뛰는데, 정열적인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진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약 50만 명이 몰려든다. 축제는 매년 7월6일부터 14일까지 열리고 축제 기간이 아니면 도시는 비교적 한적한 편이다. ‘세비야’, ‘바르셀로나’와 같은 대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관광지화 된 이곳의 사람들은 낯선 여행자에게도 쉽게 마음을 여는 순박함이 있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눈 오는 피레네 산을 넘고 처음 만난 도시의 사람들이 "mucha frío?(많이 춥지?)"하며 건네는 따뜻한 카페 콘레체(cafe con leche)에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 추천 음악: 보로딘, 오페라 이고르 공 中 폴로베츠인의 춤.
다양한 형식으로 리메이크 되어 만화, 드라마, 각종 광고음악으로까지 쓰일 만큼 독특하면서도 익숙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여행자가 낯선 마을에서 느끼는 편안함도 이과 비슷하지 않을까?

 

01_부르고스의 성당. 02_안드레아와 함께.

부르고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6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3세기에 걸쳐 공사가 진행 되었고, 유럽 각지에서 온 유명한 건축가와 장인들이 대성당 건축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부르고스 대성당에는 유럽의 건축양식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시대에 이 성당은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의 중요한 통과지역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부르고스는 카미노 전반기를 상징하는 곳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각자의 일정에 따라 함께 걸었던 동료들과 이별하는 순례자들이 많다. 내가 프랑스에서부터 함께 걸었던 아르헨티나 출신 안드레아와도 이 곳 부르고스에서 작별했다. 10년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하고 나니 갑자기 결혼이 무서워져 도망쳐 왔다던 그녀는 약간 대책 없어 보였지만, 남미인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여행길 내내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친구였다. "부엔 까미노 안드레아!"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순례자들은 서로의 순례길을 축복해주며 Buen Camino '좋은 여행하세요'라고 하며 인사한다.)

+ 추천 음악 :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中 겨울
아르헨티나의 정열을 그대로 전하는 현대음악의 거장 피아졸라. 그가 느끼는 겨울은 어떤 느낌인지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비발디의 사계와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01_오 세브레이로 마을의 전경. 02_갈리시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숲길. 03_뽈보요리. 04_뽈보를 먹으며 한 잔.

오 세브레이로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나는 갈리시아 지방의 첫 번째 도시이다. 갈리시아 지방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첫 번째는 해산물. 이 지역의 풍부한 해산물 요리는 여행자들에게는 꼭 맛보아야 할 필수 음식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삶은 문어에 올리브유와 고춧가루로 양념을 한 ‘뽈뽀(POLPO)’ 요리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두 번째는 바로 비. 일 년 내내 비가 내리기로 유명한 이곳의 기후는 이 지방을 거쳐야 하는 순례자들을 고생시키지만 하루 종일 계속되는 보슬비는 고즈넉한 숲길의 운치를 더한다.

‘오 세이브로’는 1330m 높이에 있는 작은 마을로 피레네 산맥 다음으로 높고 힘들어,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죽음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힘겹게 산을 오르고 나면 비로소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 그림이 되는 고지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근교에 펼쳐진 오스 안까레스 산맥의 울창한 숲과 그에 어우러진 빠요사(Paloza)가 바로 그 것인데, 초가지붕 끝이 뾰족하게 생긴 독특한 모양으로 현존하는 스페인 건축물 중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형태라고 한다.

+ 추천 음악 :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스페인이 태생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가 헌 책방에 버려져 있는 악보뭉치에서 이 곡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반주 없이 첼로 혼자서 만들어가는 잔잔하지만 특별한 선율은 빗소리와 함께 갈리시아를 여행하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01_보타 푸메이로. 02_산티아고 성당. 03_산티아고 광장 앞의 막 도착한 순례자의 모습.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 곳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온 순례자들이 마침내 모이는 종착지이다. 때문에 도시 곳곳에선 긴 여행을 마친 순례자들의 고단함과 허탈함이 뒤섞인 묘한 얼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에서는 ‘타르타 데 산티아고’라 불리는 산티아고 산 유명 케이크부터 각종 티셔츠,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가리비 모양의 액세서리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번이 네 번째 산티아고 순례라던 독일 친구 마틴은 성당의 ‘보타 푸메이로(Bota Fumeiro)’를 볼 때면 이상하게 전율을 느낀다고 했다. 보타 푸메이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향을 피울 때 쓰는 거대한 향로로 끈에 매달려 좌우로 움직이며 웅장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 광경은 특별한 날에만 연출됨으로 부활절, 성탄절 같은 시기에는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도시 전체가 북적인다.

성탄절이 지나고 한적한 산티아고 성당 앞 광장에서 독일 친구 마틴을 다시 만났다. 몇 년 전 터키에서 불의의 사고로 다섯 살 난 딸을 잃고 난 후, 그는 정처 없이 세상의 길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어딘가로 또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는 그는 내게 보타 푸메이로 미니어쳐와 함께 긴 편지를 전해주었다. 편지의 끝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길이 우리를 부를 때 또 한번 순례자로 만나자. “Hasta luego(다시 만나자) 안나!”

+ 추천 음악 : 드보르작, 집시의 노래 中 내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드보르작은 7개의 독일어 시로 구성된 가곡 중 네 번째 곡이다. 그의 가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그는 당시에 자식을 3명이나 잃고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이곳에 다녀와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자전적 소설 『순례자』에서 이 길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나는 코엘료처럼 이 산을 오르고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길에서 얻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긍정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지칠 때마다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어느 날, 길이 당신을 부른다면 그건 이미 순례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저하지 말고 일단 길 위에 뛰어들라. “부엔 까미노!”

 

 그녀의 여행지를 눈으로 함께 따라가는 한 순간 한 순간들 속에 기자 또한 그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의 기분이었다. 글로만 읽어 내려갔을 뿐인데, 이렇게 황홀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느낌이 든다면, 직접 가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 마음 따뜻한 추억들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 방학에 해외로 떠날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마땅한 여행지를 정하지 못한 국민*인이라면 믿음직스러운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이 좋겠다. 

* 이 여행기는 손안나(중어중문학과 06) 학생이 기고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