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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20's] 이은형 교수님의 20대 청춘 page

  • 작성자 신진효
  • 작성일 14.01.07
  • 조회수 11909

우리 교수님은 젊었을 때 어떤 분이셨을까? 교수님의 20대를 파헤쳐보는 ‘back to the 20s’, 그 8번째 주인공 이은형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9시 뉴스에 번쩍 신문에 번쩍 여기저기 활발한 활동으로 종횡무진하시는 이은형 교수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도 저리 가라할 정도로 바쁘시다. 최근에는 서수민(개그콘서트PD), 알랭 드 보통(작가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수잔 케인(협상 전문가 겸 작가) 등의 국내외 유명인사들과 함께 세계여성경제 포럼 2013에 참가하기도 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셨다. 지금의 이은형 교수님이 있기까지 그녀는 어떤 삶을 걸어왔을까? 지금부터 제대로 파헤쳐 보자.


Q. 최근 세계여성경제 포럼에 참여하셨는데 어떤 행사였나요? 또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글로벌 시대에 맞는 여성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주제였고, 마침 경력전환의 대표자로 참석 요청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경영대학 취업 담당 주임교수로서 학생들의 취업 역량 강화, 메이저 기업과의 산업 협력 체결, 인턴십 개발을 위한 학생 DB 정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의 과거로 돌아가서 대학시절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께서 했던 전공은 무엇이었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나요?
대학시절 전공은 역사학이었어요. 단순히 역사가 재밌어서 선택했어요. 또 평범한 길을 가고 싶지 않았어요. 대개 여학생들이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 영문과 같은 어문 계열을 많이 선택해요. 제가 대학생일 때는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했는데 저는 여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길을 가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선택을 한 것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부 시절에 역사를 공부했다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었어요. 덕분에 어떤 사안이나 사물을 볼 때 역사적 배경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볼 수 있었어요.

Q. 대학시절, 교수님의 별명은 무엇이었나요?
친구들은 저를 ‘얌전한 고양이’라고 불렀어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잖아요. 겉으로는 얌전하고 순진해보였는데 알고 보면 연애도 잘 하고 할 건 다하고 있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에요. 사실 연애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남자친구가 있었을 뿐인데 친구들이 보기에는 제가 연애도 못할 것 같아 보였나봐요.(웃음) 제가 겉보기와 실제 모습이 다르다고 해요. 겉보기에는 조용해 보이지만 실제는 더 강하고 활발한 편이에요. 굉장히 두려움이 많았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열정이 있었고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행동했었어요. 한창 학생 데모가 많이 일어나던 시절에 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읽는 모습이 친구들한테는 강하게 보였던 것도 별명이 붙은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Q. 대학시절,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1학년 때 딱 한번 미팅을 나갔었어요. 그 당시 서울대학교 여학생이 굉장히 적었어요. 제 학번에 여학생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는데 그래도 소수였죠. 상대방이 고대 공대생이었는데 미팅을 나온 이유가 ‘그냥 서울대 여학생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굉장히 웃겼고 세상에 그냥 궁금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참 신기한 사람이었어요. 음 요즘 학생들에게 재미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네요.


Q. 교수로 경력 전환을 하기 전에 기자로 10년간 일하셨는데 갑자기 그만두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엔 교수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대학교에 입학했었어요. 그런데 사회 현실과 역사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졸업 후, 나는 무엇이 되면 좋을까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내가 사회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은 기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자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하는데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환위기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IMF 위기라고도 하는데 지금이야 교과서에도 나오고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때는 IMF가 뭐하는 곳인지 IMF로부터 금융구제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기자들도 몰랐어요. 그러다보니 무식한 기사도 많고 잘못된 기사도 많았죠. 결국 기자들이 국민들을 호도해서 나라가 그렇게까지 가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기자의 펜대에 실린 무게를 느끼고 그것을 담기에는 내 지식의 크기는 너무나 작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KDI 국제정책대학원에 진학해 영문으로 경제·경영학을 공부 시작했습니다.

Q, 기자 외에도 외신대변인이라는 경력도 있으십니다. 어떤 직업이고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국가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가 달라지는데 IMF로 인해 국가 신용등급이 매우 떨어져 있었어요. 국가 신용등급을 올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외국 언론들입니다.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한국의 구제금융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블룸버그, 월스트리트, 파이낸셜 타임즈 등 많은 외국 언론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언론들에게 한국의 정책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죠. 상황을 인식한 산업자원부에서 처음으로 외신대변인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영어는 조금 딸리지만 기자로서 산업자원부에 자주 출입해봐서 업무 이해도가 높고 언론을 잘 알아서 외신대변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여 더 이상 한국이 IMF의 가이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외신대변인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해서 국민대에 교수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대학시절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교수의 길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민대학교에서 교수로 오려고 했던 순간에 헤드헌터 회사에서 외국계 대기업의 임원직을 제안해 왔습니다. 면접을 가서 연봉협상을 하는데 대학원을 막 졸업한 저는 회사의 연봉 수준을 잘 몰랐어요. 연봉을 얼마정도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식으로 2억을 불렀죠. 그런데 오히려 회사에서는 “very reasonable(매우 합리적이야)”라며 오히려 반색을 하더군요. 나름 높게 부른 건데 2억보다는 더 많이 생각했나 봐요. 마침 교수로서 내가 과연 자리를 잘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확신성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였는데 반면에 이쪽은 아주 확실한 보장이 되는 길이었어요.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면서 내가 돈은 없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이 돈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들어갈 때 가졌던 교수라는 꿈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나한테 더 매력적인 직업은 교수라고 판단해서 임원직은 거절하게 됐어요.

Q. 요즘 20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입니다. 교수님의 20대에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제 20대는 뭐가 뭔지도 몰랐고 불확실성, 불안, 공포가 뒤섞인 chaos(혼돈)이었어요. 왜 사람들이 청춘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지도 몰랐어요. 예를 들어 연애만 해도 내가 이 남자와 결혼까지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살까? 내가 생각하는 이것이 정말 옳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서 괴로워했어요. 그런데 20대 때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이게 과연 최선일까, 옳은 길일까 라고 고민하면서 그 길을 가는 것인 것 같아요. 그것이 정말 최선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일단 어떤 쪽이든 발을 내딛고 최선을 다해서 가다보면, 또 자기가 추구하는 어떤 길이 있다면 열리는 것이고 한발 한발 가다보면 그게 길이 되고 그 길이 어떤 큰 길로 인도하는 것이에요. 처음부터 안개가 다 걷혀있고 길이 쫙 보이고 지도처럼 착 펼쳐진 건 없어요. 20대는 그런 캄캄하고 짙은 안개 속에서 바로 내 앞을 보면서 최선을 다해 한발 한발 나가는 시기에요. 지금 돌이켜보면 길이 보이는 것이지 그때는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어요.

Q.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국민*인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보세요. 직장이나 진로를 선택할 때 '연봉이 높아서' 또는 '남들이 알아주니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업종을, 기업을 선택하세요.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꿈이 아닙니다. 내가 그 직업을 갖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직업을 통해서 이러이러한 삶을 갖고 싶다는 것이 바로 꿈입니다. 흔히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 “왜?”라는 질문을 몇 번만 던지면 자신의 진짜 꿈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가족과 따뜻하게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그렇다면 벌써 돈이 목적이 아니란 거죠. 나는 왜 취업을 하려고 하지? 나는 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나는 왜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을까?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을 붙여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깨달으면 바람직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내가 20대 때는 몰랐었지만 우리 학생들은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보길 바라요.

Q. 요즘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가 인기입니다.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요, 만약 교수님이 20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대학 생활을 하고 싶으세요?
제가 문화 예술쪽으로 관심이 되게 많아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문화 예술을 굉장히 많이 즐길 것 같아요. 공연도 보러 다니고 뮤지컬 체험도 해보고 인문학적인 문학 작품도 잔뜩 읽고 그런 것들에 흠뻑 빠져보고 싶어요. 문화 예술계통의 직업을 갖진 않았겠지만 그런 것들을 늘 향유하고자 노력하며 즐기며 살았을 것 같아요.

 

인터뷰하는 내내 이은형 교수님의 인생사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화려한 상패와 경력의 발자취 뒤에는 치열한 고민과 자아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 단순히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으로 내가 추구하는 길을 찾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 헤매이는 경우가 많다. 하루 5번씩만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이 기사를 읽고 있을까? 사소한 일이라도 좋다.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해 국민*인들이 자기만의 가치를 찾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이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