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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찾습니다 #15] 현대미술가 백정기를 만나다.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14.04.08
  • 조회수 19854

 

젊은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대안공간 루프 전시, 미술계의 인지도 높은 상인 '송은 아트 스페이스'에서의 수상, 깐깐하기로 소문난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2년마다 열리는 '젊은 작가 모색전'에서 작가로 발탁 되어 전시를 연 실력 있는 작가 백정기. 그의 전시 이력은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력일 것이다.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그. 현재 작업을 병행하며 국민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의 강사로 활동 중이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실기실에서 뜨거운 열정을 내뿜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 대안공간 - 1990년대 미술관이나 화랑의 권위주의와 상업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만든 미술가를 위한 비영리적 전시 공간이다. 현재는 대안공간들의 입지가 커지면서 대안공간 루프가 새로운 대안공간의 주도가 되었다.

 

Q. 안녕하세요. 홍보팀 웹기자 온통입니다. 백정기 작가님의 작업이 좋아서 항상 관심이 많았습니다. 현재 미술계에서 촉망 받는 젊은 작가로 생각되고 있는데요. 국민대학교 재학 시절의 작가님이 궁금합니다. 어떤 학생이셨나요?

상상이 안 되겠지만, 저는 말수가 적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조용히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밤새 작업을 한 적도 많았구요. 창작을 하는 것이 좋았어요. 제가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만 하는 스타일인데, 입체미술전공이 저에게 참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전공과목 수업을 참 좋아했습니다. 친구들, 교수님들이 인정해 줄 만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아, 저 친구는 정말 만드는 걸 좋아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한 가지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기에 매진하는 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전공과목은 항상 A 혹은 A+인데, 교양 수업은 분명 수업을 들어가고 열심히 공부하는 데도 불구하고 항상 F였습니다. (웃음) 그러다 보니 제가 잘 하고 좋아하는 한 가지에 더욱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Q. 친구들에게 어떤 학생이셨나요? 인기가 많은 학생이셨나요?

글쎄요. (웃음) 저는 초창기 국민대학교 출신이에요. 00학번입니다. 당시 미술학부 입체미술전공은 남학생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과에 있는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남자들은 군대를 가잖아요? 그러면 과에 있는 형들이 대부분 휴학을 해서 과의 유일한 남자가 되기도 했어요. '입체미술'이라는 과 특성상 무거운 돌을 옮기거나 크기가 큰 나무를 옮기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을 옮기는 일은 항상 제 몫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무거운 짐을 옮기기엔 육체적으로 힘이 드니까요. 인기라기 보단…….(웃음) 이런 것들에 있어서 잘 도와주는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Q. 왠지 작가님의 학창 시절이 그려집니다. 작업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작가님께서는 한 재료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작업을 하시기로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해 오신 작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첫 작업은 바셀린 작업이었습니다. 상처에 관한 작업이었고, 제 유년기 시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항상 바셀린을 바르던 기억에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그 후에는 물이라는 것의 유동성, 생명이 시작되는 근원 등 물이 가지는 메시지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물이란 참 감성적인 물질이라고 생각해요. 촉촉한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특성을 띠고 말라있는 것은 죽어있는 생물체에 대한 특성을 띠죠. 그래서 처음 물에 관심을 가질 때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 또한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라를 막론하고 물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물질입니다. 물 부족 국가에서는 물은 필수 요건이자 삶이 걸린 물질이죠. 왜 가뭄 끝에 물이 오는 것을 '단비'라고도 하잖아요? 그런 언어적 유희 같은 것들이 작업 속에 드러났고 사막에 가서 혼자 기우제를 지내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들을 시도했어요. 그 작업 이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조각가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도 했었고, 기우제를 지내는 행위에 대한 의문도 들었고, 여러 가지 성찰을 시간을 가진 후 연못과 같은 우리 일상 속에 있는 관념에 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진짜 재료를 이용해 색을 추출하는 사진 작업을 했습니다. 그게 발전되어 한강 물을 이용해 리트머스 지를 적셔 한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과 가장 최근에는 동상을 이용한 안테나 작업을 했습니다.

 

 

2007. 작업 Treament: SW1P 4JU, Vaseline, Dimension Variable, 2007

 

Q. 바셀린 작업에 있어서 유년기 시절의 상처 때문이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유년 시절에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바셀린은 상처 부분에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바셀린을 항상 몸에 발랐습니다. 지금은 다른 형태의 약을 바르고 있지만, 바셀린은 저에게 있어 유년 시절의 제가 경험한 것을 공유하는 물건입니다. 화상이 제 삶에 있어서 저를 만들어왔고, 또한 그 사실로 인해 제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상처가 제 작업보다 더 부각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런 제 경험적인 부분은 인터뷰에 있어 최대한 적게 말하는 편입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 그런 의미라기보다 제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물리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작업에 대한 틀이 넓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기계나 화학 같은 것들을 이해하고 작업물로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미술 재료들로 작업을 하는 것 보다 힘이 듭니다. 저는 저의 미술 작업이 그저 감성만을 부르는 작업이 아닌 과학이 가지는 실질적이고 논리적인 특성들이 제 작품에도 있길 바랍니다. 그런 것들이 과학적이라고 보일 수 있겠죠. 그러나 제 작업에 단지 그런 것들을 차용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주가 되진 않아요.

 

Q. 작가님의 작업은 개념을 중점으로 하는 작업이 많은데요, 작업 구상을 할 때 어디서 영감을 많이 받으시는 지 궁금합니다. 또, 작업에 집중하기 위한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 혹은 공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책으로 간접 경험을 합니다.(실제로 작가는 가방에 항상 NEWTON이라는 과학 잡지가 있다) 주로 국립 중앙 도서관을 자주 갑니다. 거기서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을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병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그래서 딱히 공간은 없습니다. 작업실은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고 저는 주로 그 밖에서 구상을 많이 합니다.

 

Q. 존경, 혹은 좋아하는 작가나 작업이 있으신지요?

글쎄요. 요즘에는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유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영국 작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영향이 컸어요. 그 작가의 작품은 정말 경외감이 들게 하죠. 작품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이 정말 좋아요. 다른 좋아하는 작품은 영국 작가 사이만 스탈링(Simon Starling)의 작품들입니다. 그 작가의 개념적인 부분을 좋아해요. *선인장 프로젝트에서 그 작가의 재미난 사고 체계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사막에 살던 선인장이 어떻게 베를린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작업. 전시장 난방을 선인장의 온도에 맞추고, 물 배선 등을 끌어오기도 한다. 자연과 역사, 생태계와 관련된 작업을 한다.

 

Q. 많은 미대생들이 졸업 후에도 본인 작업을 하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작업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님께서 졸업 후 작업을 하기로 확고하게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4년에 졸업을 하고 2년 동안 조병섭 교수님 작업실에서 일을 했습니다. 일을 도와드리며 개인 작업을 병행했기에 2006년에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첫 개인전을 하고 작업을 그만둡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만큼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오지 않거든요.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업을 한 것인데, 전시를 보러 오는 건 가족, 친구, 주변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많은 실망을 합니다. 저또한 그랬습니다.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현대미술 안에서 무언가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으니 허탈할 수밖에 없죠.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그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감정들은 첫 전시를 하는 작가가 거치는 수순인 것 같습니다.

첫 전시 후, 정말로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확고했습니다. 변하고 싶었습니다. 좀 더 알아야겠다는 결심이 들기 전까지는 대학원을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준비 없이 졸업 후 바로 대학원을 간다는 건 대학교 5학년과 비슷합니다. 정말로 본인이 배우고 싶다고 느꼈을 때 가는 게 좋아요. 개인전을 열면서 느꼈던 감정들 때문에 저는 대학원 유학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배움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물론 힘든 결정이었지만, 당시에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잘 맞아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한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정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 기도 합니다.

 

Q. 작가의 길을 가면서 힘들었던 일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극복 과정과 해결 방법이 궁금합니다.

항상 어떤 실패 이후에 그걸 극복하려 했던 노력들이 반복되었던 것 같습니다. 도전하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그리고 거기서 얻은 성찰이 있고 그렇게 20대가 끝났던 것 같아요. 작업은 항상 힘듭니다. 전시회를 한번 여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하나의 인생의 굴곡을 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노력을 해 전시를 준비해도 반응이 좋지 않을 때가 많죠. 또, 금전적인 이유로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작업실이 없어요. 저는 운 좋게도 작업실이 있지만,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계속 작업하기 힘든 환경이죠. 그렇기에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작업을 할 수도, 전시를 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도전을 하고, 실패하고, 거기서 배우면서 사람은 성장합니다. 뭔 가를 깨려고 발버둥 치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안주하지 않는 것이 그 극복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안주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웃음) 남들보다 조금 더 우직한 편입니다. 한 가지를 밀고 나가는 편입니다.

작업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조금씩 넓혀간 것 같습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이요. 욕심을 버리고 그 한계 안에 있으면 편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만 하면 사실 참 편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부러 다음 전시는 더 어렵게 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더 어렵게. 어떤 자신의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선을 팽팽하게 두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점점 잡아당겨 늘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 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현재는 작업 스케일에 관한 두려움이 없어요. 할 수 있는 것만 했다면 지금의 저는 있지 못 했을 거예요.

 

Q. 작가로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나 행복했던 순간이 있나요?

연예인만 걸린다는 연예인 병처럼, 중국에서 작업을 하던 중 돌아와 '단비'라는 작업을 했을 때 실신한 적이 있어요.(웃음) 작업실에서 단비의 사카린 작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핑~하면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공황 장애가 있어요. 중국에서 돌아와 한국의 작업실 문을 여는 순간 그게 갑자기 나타난 거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엉금엉금 기어 바로 옆방으로 갔어요. 마침 옆방에 저와 친하게 지내던 저보다 나이 많은 작가님 한 분이 계셨어요. 그분을 보자마자, "1... 119... 119 좀 불러주세요."하고 쓰러졌습니다. 작가 형님께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병원을 갔습니다. 다행히도 그 일은 그렇게 잘 풀렸어요. 공황 장애가 그렇게 크게 온 적이 없었기에 저 스스로도 무척 놀랐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술자리 같은 데서 웃긴 이야기를 할 때 가끔씩 말할 정도에요. 그때 저를 도와주셨던 작가 형님께서는 우스갯소리로 "아, 정기 작가 그때 큰일 났으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작업 진짜 잘 팔리는 건데~." (웃음) 그런 농담도 합니다.

 

Q. 지금까지 백정기 작가님의 작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과 삶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치관이라기보다는 작가로서 중요시 여기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작가에게 있어 성실함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 살아남기란 정말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즐기길 바랍니다. 작업은 즐거움과 슬픔이 공존합니다. 예술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저에게는 좋은 변명거리입니다. 하고 싶은 생각, 하고 싶은 행동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그 만큼의 책임이 따릅니다. 저는 버티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어디서든 하는 말이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참고 이겨낸다는 것. 그것이 작가가 정말로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국민대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미술 관련 책이나 전시가 있으신지요?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가이스트 시대정신을 추천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도움이 될 거에요. 일반인이든, 미술을 공부하는 학도든 가서 전시를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겠다고 뽑은 작가는 어떤 작가들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에는 전통적인 재료에 관심이 갑니다. 흙 같은 거요. 그래서 그런 재료 관련 구상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진행 중인 작업은 현재 대구에서 대구 지하철 추모 관련으로 대구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고요, 4월에 있을 신사동의 한 가방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6월 초, 8월 초에 있을 전시를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8월 초 작업은 전에 했던 사진 작업의 연장일 것 같아요. 그 외에 개인전은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입니다.

 

Q. 작가님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제가 작업을 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음…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잠을 자기 싫은 감정이 있었어요. 잠을 자도 빨리 아침이 되길 바라는 그런 감정들. 그런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작업을 하는데 굉장히 행복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게 내 길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지금도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 즐거움을 유지하는데도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즐거움이라는 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일단 자신이 재미있는 것을 하게 되면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한계보다 3,4배는 더 높이 뛸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정말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걸 하면서 드는 고민은 고민이 아니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한 두근거림을 동반한 설렘인 거죠. 저에게 있어 작업이란 그런 것입니다.

저는 어떤 학과를 나왔으니 그 과에 맞는 일을 하라는 말보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기의 욕구에 굉장히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머리로는 계산하지 말고 자신의 가슴이 어떻게 느끼는 지에 귀를 기울여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자신만의 즐거움으로 시작하겠지만, 나중에는 자신만의 즐거움이 아닌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즐거움을 통해 생산된 것을 누군가 체험할 때 그 사람들도 똑같이 어떤 에너지를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단 움직이세요. 행위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를 바라요. 그게 엄청난 도박이고 결단력이 필요해도 했으면 좋겠어요.

 

Q. 긴 시간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볼 때 지금 한 말씀들이 생각날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항상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라는 생각을 해요. 그때는 정말 제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 싶어 한 것인데,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말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은 말들이 많아요. 그래도 이런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이 글을 보고 작업을 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있어 도움이 되길 바라요.

 

 

 

2007. 작업
Treament: SW1P 4JU, Vaseline, Dimension Variable, 2007

어린 시절 작가가 겪은 상처에 관한 작업. 작가는 어린 시절 입은 화상 때문에 피부에 바셀린을 자주 발랐다고 한다. 또한 작가의 부모님께서는 어릴적 작가를 때리신 후 상처 부위에 바셀린을 발라주셨다. 바셀린은 상처 부위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고 머물게 함으로서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한 점 때문에 작가는 바셀린이 갈등을 봉합한다고 생각한다. 바셀린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 장비를 만든 것도 그 이유 때문. 이로 인해 작가는 구멍 난 벽에 바셀린을 바르는 등 유년기 시절의 상처를 물체에 대입하여 작업을 풀어나가고 있다.

 

 2010. 작업
Sweet Rain Water mixed with saccharin (sweetener), Watering system installed on the ceiling .Dimension variable,  2010

인사 아트센터에서의 전시. 사카린을 이용해 빗물을 달게 만들었다. '단비' 라는 언어적 유희를 표현한 작품. 관객들은 빗물을 맛 볼 수 있다.

  

2011-2013. 작업
Is of: Naejangsan Printed with pigments extracted from fall foliage 165x 110cm, 2011
Is of: Seoul Printed with river water on Litmus paper 42 x 29.7cm, 2013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여행을 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와 여행 사진들을 보다보면 이상한 결핍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우리가 직접 그 곳에서 경험한 피사체들은 결국 그 곳에 있고, 우리가 보는 사진은 그 피사체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허상인 것이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시 공간적으로 그 공간과 완전히 독립된다. 공간은 변하고 사진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연결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 속에 있는 실제 잎사귀들을 이용해 사진의 색을 나타내었다. 실제의 한 부분이 사진 안에 있으므로 인해, 단순히 그 당시의 추억으로 끝나는 이미지가 아닌, 곁에 있는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더 이상 그 장소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 작업은 처음에는 잎에서 색을 추출해 사진을 뽑는 것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리트머스지에 서울의 강물을 흡수 시켜 서울의 강을 표현한 작품으로 발전 된다. 이 작업은 색 추출 기계를 만드는 데만 2년 가까이 걸렸다.

 

Jung-ki Beak, Memorial Antenna: T-34 Tank
A tank as an antenna, Shotwave receiver, Spectrum display, Horn speaker, etc.
Dimention variable, 2011

세계 각 국에서 상징성을 띄고 있는 동상들은 사실 청동 혹은 쇠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시작된 작업. 단 위에 놓아진 작품은 결국 하나의 철 조각일 뿐,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담아 작품을 본다. 본질을 잊은 채 시각의 파시즘 속에 살고 있다. 상징을 가진 모든 입체 작품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을 바라는 폭력성을 띠고 있다. 그의 작업은 권위적 폭력을 거부한다. 그것을 안테나용 철 덩어리로 하락시켜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