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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도전하는 산악인, 정문근을 만나다

  • 작성자 최원석
  • 작성일 15.08.18
  • 조회수 14295

 

북한산의 신선한 정기를 듬뿍 받고 있는 국민대학교! 그러한 덕분인지 주말마다 친구와 함께 등산을 즐기는 국민*인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인근의 산뿐만 아니라 국내의 명산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쟁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우리나라의 설악산, 삼악산, 치악산 그리고 해외의 히말라야 산맥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아일랜드 피크, 본디드 피크 등 어떤 곳이든 도전하고 본다는 정문근(법과대학 법학부 11학번) 학생. 그의 생생한 산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정문근 학생이 등반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막상 대학교에 오니 방황을 하게 되더군요. 수업에 자주 가지 않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며, 소중하게 보내야 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선배가 우리학교 근처에 있는 북한산에 올라가자고 했어요. 원래 체력이 약해서, 비교적 난이도가 높지도 않은 북한산에 올라가는데도 엄청난 사투를 벌일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당시의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황홀한 기분을 하산하는 동안에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 히말라야 고쿄리 호수(左上), 트레킹 베이스캠프(右上), 본디드 피크 등반 중(下) 


Q. 해외 등반에까지 관심을 갖고 몸소 실행에 옮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등산에 흥미가 생긴 이후,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어요. 같이 등반하던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연히 히말라야 트레킹 등 해외 원정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설악산을 종주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면 크게 어렵진 않다’ 등 체험자들의 후기, 관련 기사 자료를 읽어보며 정보를 얻고 난 후,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원래 국내 등반을 할 때에도 혼자 산을 타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가이드나 포터(짐꾼)없이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해보니 설악산 종주와는 달리 소요 시간, 등반 스타일이 달라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Q. 첫 해외 등반에 도전함으로써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있나요?

제 체력이 제가 원하는 정도의 등반을 자유롭게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당시 제 실력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시도였죠. 당장은 부족한 만큼, 앞으로 무엇이 더 필요할지 고민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 스스로 목표를 두고 고군분투해서 결국 해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뿌듯했습니다.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 지역을 지나는 도중


Q. 이후에도 계속된 등반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첫 해외 등반을 다녀온 뒤 4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국내 등반을 계속했어요. 군대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혼자 네팔로 떠나고 싶었어요. 이전보다 더 난이도가 높은 코스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갔는데, 막상 네팔 현지에 도착해 트레킹을 준비하는 도중, 아일랜드 피크(Island Peak)로 알려진 임자체라는 봉우리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됐어요. 6,189m로 아마추어들이 많이 올라가는 곳으로 ‘이번에는 여기에 올라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트레킹과 봉우리를 오르는 과정은 매우 달라서 색다른 경험에 이끌리게 된 것이죠. 그래서 현지에 있는 등반 에이전시를 돌아다니며 더욱 자세한 정보를 모았고, 결국 등반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Q. 현지에 가서 등반 결정을 한 만큼, 위험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원래 빙벽화, 하네스(harness), 자일(seil), 스크류(screw), 크램폰(crampon)과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고 등반에 필요한 설상 훈련, 빙벽 등반 기술, 등반 시스템 훈련 등을 배워야 해요. 이때 당시만 해도 이러한 장비와 기술을 갖추지 못했지만, 무조건 도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10일정도 혼자 에베레스트 지역을 지나,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서 셰르파일행과 합류한 후, 기본적인  훈련을 며칠간 받고 새벽에 베이스캠프를 떠났습니다. 중간중간 먹고 자고할 수 있는 하이캠프 없이 곧바로 정상을 향해 10시간 정도 등반을 했지만, 100m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 결국 하산을 결정했습니다. 엄격히 따지자면 6,189m의 고지 등반에 실패했음에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어요. 결과가 어떻게 됐든, 전력을 다해서 한계에 도전하는 것, 그 자체에서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 트레킹, 등반을 하는 묘미 중 하나는 자연 경관을 감상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Q. 등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등반 실패 후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등산학교에 입학해서 암벽 타기 등을 배우고, 체력을 증진시키기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트레킹도 좋지만 험준한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갖춰야할 기술을 익히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고 판단했거든요. 이 시기에는 해외보단 국내 등반 코스를 많이 돌아다녔죠. 최악의 조건 하에서도 산을 오를 수 있도록 훈련을 했어요. 가령 비와 눈이 오는 상황에서도 인수봉을 오르는 등 해외 등반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발톱에 피멍이들 정도로 고되기는 했지만 즐겁게 산을 탔던 것 같아요. 심지어 군대에 가서 하루도 히말라야 등반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만큼 산악은 저에겐 가슴 설레게 하고, 저를 흥분시키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Q. 최근에도 등반을 위해 해외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군 시절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왔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전역하지마자, 아파트 외벽을 타고 페인트칠을 하며 원정 비용을 모았어요. 산악회나 산악부에 속하지도 않아서 등반에 대한 정보나 노하우가 부족한 상태였지만, 파키스탄 현지 등반 에이전시와 연락해가며 착실히 차근차근 준비해나갔죠. 이번에 다녀온 산은 파키스탄 히말라야 본디드 피크인데 고지 6,700m로 세계에서 한 번도 등정이 이루어지 않은 산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나 봐요(웃음). 여태까지 제가 해온 등반과는 다른 차원의 기술과 체력을 요구했고, 생명에 대한 위협까지 느꼈거든요. 결국 또 실패했지만... 실패는 단순히 했느냐, 못했느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전 앞에 좌절하고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노력해 언젠가는 8,000m급에 올라가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 국내 인수봉 빙벽 등반


Q. 등반 도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두 번째 히말라야 원정을 갔을 적, 그만 길을 잃어버려 앞에는 빙하 뒤는 방향을 좀 잡을 수 없는 돌길에서 헤매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반대편 계곡 쪽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더군요. 여기서 밤을 새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을 불안에 떨던 중, 다행히도 지나가던 트레커가 저를 발견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돌을 놓아 겨우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국내 암, 빙벽 등반 중엔 제 자일을 잡아주던 분이 실수해서 7, 8m를 떨어지기도 했어요. 암벽 등반의 경우 서로 번갈아가며 로프를 걸고 잡아주는데, 제가 선등하는 도중 첫 볼트를 걸기 전에 떨어져 아찔했던 기억이 있어요. 떨어질 땐 그냥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Q. 산악 등반을 하며 느낀 점이 있나요?

'단순함'과 '감사함'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등반 중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하고 초조해져서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그냥 ‘단순한 일이다’라고 마음을 먹고 해결하면 어려움 없이 잘 풀리더군요. 안절부절 못하거나 마음 편히 있는 것에서 진행 속도의 차이는 없으니, 불안한 상태로 있을 바에 그냥 느긋하게 잇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죠.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단순한 것이 오히려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가령 산에서도 복잡한 매듭은 사고로 이어지지만 단순한 매듭은 안전하고 잘 풀리지 않는 것처럼요. 또 산을 타다보면 사소한 것들이 참 그립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면 그냥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생각, 푹신한 곳에서 자고 싶은 생각, 뜨거운 물로 씻고 싶은 생각,  친구를 만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막상 집에 느긋하게 있었을 땐 권태함이 찾아오고 지루하기만 했던 모든 것들이요. 20여 일만에 산에서 내려와 샤워하면 너무 행복해 혼자 미친 것처럼 웃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행복은 별로 복잡한 게 아닌 것 같다고 느꼈죠. 
 

 

▲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 지역의 경관 


Q.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할 요소들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어떨까요?

트레킹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체력이 부족하지만 해외 트레킹을 꼭 하고 싶다면, 현지의 가이드나 포터를 고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산악 등반의 경우는 산악부 혹은 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고 도전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등반 기술과 각종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거든요.

네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와 등반지로인해 수많은 여행객들이 몰려 자연스럽게 편의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달되어있습니다. 반면 파키스탄은 치안 문제와 테러와 관련된 국가 이미지 때문인지 네팔보다는 사람이 덜 몰리며 여행객을 위한 시설이 비교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이슬람 국가라는 점도 한몫해 금기된 사항도 많고요. 다만 같은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다고 해도 파키스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훨씬 위압적이라고 느꼈어요. 뿐만 아니라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싶다”라고 말하는 에이전시 담당자의 얘기를 듣고 그들은 ‘사업’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느낌을 받아 감동하기도 했어요.
 

 

▲ 국내 인수봉 암벽 등반


Q. 산악 등반에 관심 있는 국민*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입니다. 오색에서 출발해 희운각 대피소로 가는 길은 ‘이것이 평소 내가 접하는 한국의 풍경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품고 있어요. 그마나 가까운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강촌의 삼악산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제법 거칠고 깊은 협곡을 끼고 있지만, 각종 기암절벽과 계곡이 어우러지는 굉장히 멋진 산입니다. 여름에 간다면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산채 비빔밥과 먹걸리 한 잔을 걸쭉하게 즐길 수 있는 곳도 있구요. 겨울이라면 원주의 치악산의 눈 내린 장관을 눈에 담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명산이 많이 있으니 이를 주변 사람들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산악 등반을 하면서 행복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정문근 학생.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갑작스런 크레바스(crevasse) 발생에 대한 불안감, 웅장하고 거대한 산맥으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 육체적 한계에서 오는 피로감 또한 등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악조건에 대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것에서 희열과 쾌감이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더욱더 높은 목표를 향해, 언제든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그에게서, 만년설도 녹일 청춘의 뜨거운 열정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