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언론속의 국민

‘일본학 총서’ 출간 자축연 / 김영작(국제학부)교수

  • 작성자 장상수
  • 작성일 06.04.24
  • 조회수 8449

[동아일보 2006-04-24 04:25]  

[동아일보]

“‘암에 걸리고 나니까 비로소 국제정치가 이해되더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완치할 수 없는 병과 공존할 줄 아는 지혜를 국제정치에서도 터득해야 한다는 깨우침이었습니다. 한일관계에서 독도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도 암과 싸우시면서 앞으로도 좋은 책을 많이 써 주십시오.”

한국인 최초로 최근 도쿄(東京)대 동양문화연구소의 교수가 된 현대송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운니동 한정식집 ‘송죽헌’에서였다. 한일관계 전공 학자 20여 명이 모인 자리였다. 최근 출간된 ‘일본학 총서’(전 3권·본보 4월 18일자 A21면 참조) 필자들의 조촐한 자축파티였다.

이날 광주와 대구뿐 아니라 일본 도쿄에서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학자들의 마음속에는 공통된 한 명의 학자가 있었다. 올해 2월 정년퇴임한 김영작 국민대 명예교수다.

김 교수는 작년 말 폐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를 민 채 모자를 쓰고 모임에 나타난 김 교수는 체중도 많이 줄어 홀쭉한 상태였지만 시종 분위기를 유쾌하게 끌고 갔다.

“죽기 1초 전에 자살을 할지언정 암 때문에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 생사의 문제에 대해선 다른 일로 많이 겪어 봐서 초연하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 병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놈을 이겨내고 미뤄 둔 공부를 마무리 짓겠다.”

학계에선 ‘풍운아’라 불리는 김 교수는 1960, 70년대 도쿄대 석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일본 학계는 물론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 교류했다. 김 교수가 유학시절 겁 없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도, 이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남한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5년여 만에 석방된 것도 일본 내에 그가 구축한 인맥의 힘 때문이었다.

김 교수를 곁에서 가장 많이 지켜본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 유학생 중 상당수가 선생님으로부터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게 정말 사심 없는 도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읍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간이 무르익으면서 화제는 자연스럽게 독도문제로 넘어갔다. 대다수 참석자들의 의견은 “일본 측이 먼저 도발한 측면도 있지만 한국 측에서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문제”라는 것. 일본에 독도는 한일관계의 한 종속변수에 불과한데 한국은 그 전체인 양 달려드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열 중앙대 교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이치로 선수의 망언이 나왔을 때 김인식 한국 대표팀 감독이 ‘아시아의 대표라 생각하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고 점잖게 꾸짖은 게 일본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줬다”며 “독도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응도 그런 대범함을 갖췄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일관계가 껄끄러워진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는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겪었고 앞으로도 계속 겪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며 “현해탄에 끼는 안개야 이런 자리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이 우정을 이어간다면 점차 사라져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나왔던 ‘차라리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발언을 예로 들며 “당시엔 그 말이 한일관계 회복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작은 것을 넘어서자는 위트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독도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국노의 발언으로 비판받게 된 것”이라며 “현재의 독도문제도 이런 한일관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지 이번 사건만을 돌출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 중에 ‘적이지만 저건 물건이다’라는 게 있다. 한국에서는 일단 적이 되면 그를 전면부정하려 들지만 일본인들은 적에게도 감복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일본인 눈에 비친 김 교수의 매력이 그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한국 정치인들이 한 번쯤 음미할 대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